축구이야기

광주를 빛낸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 강연

용의꿈 2015. 8. 18. 13:59

 

광주를 빛낸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 강연

 

 박문성 해설위원이 사회자로 나선 가운데 강연자들이 조언을 건네고 있다.

 

 

빛고을 광주에서 열린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 6차 강연은 예정 시간을 1시간 이상 넘겨 진행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학부모와 선수들은 오랜만에 듣게 된 뜻 깊은 강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17일 광주 남부대학교 협동관에서 대한축구협회 강연시리즈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 6차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에는 기영옥 광주FC단장 겸 광주축구협회장, 남기일 광주FC 감독, 광주FC 김호남, 윤영길 한국체대 교수가 강연자로 참석했다. 약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연장은 학부모, 선수와 일선 지도자들로 꽉 찼다.

대한축구협회 강연시리즈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는 2012년부터 시행된 학부모 아카데미를 계승해 작년부터 선보였다. 이 강연회는 유소년 축구 선수를 키우는 학부모와 유소년 선수 및 지도자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구자철의 아버지 구광회 씨가 참석해 1차 강연이 시작됐다. 5월 열린 2차 강연은 최순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기성용의 아버지 기영옥 광주축구협회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7월 열린 3차 강연에는 박지성과 그의 아버지 박성종 씨가 참가했다. 11월 4차 강연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열린 가운데 국가대표팀에 몸담았던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5월 열린 5차 강연에는 윤정환 울산현대 감독, 유상철 울산대 감독, 울산현대 공격수 김신욱과 골키퍼 김승규가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설파했다. 그리고 이날 광주에서 6차 강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기성용의 아버지인 기영옥 광주FC 단장 겸 광주축구협회장은 아들을 키워낸 경험담과 축구 발전을 위한 개선책을 이야기했다.

 

‘부상, 신체조건, 슬럼프’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학부모와 선수, 일선 지도자들의 질문에는 이들이 현실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는 문제가 녹아있었다. 선수들과 학부형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인 부상과 이로 인한 슬럼프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김호남은 “부상을 당한 뒤에는 근육이 약해지는데 많은 유소년 선수들이 중요성을 몰라서 보강훈련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보강훈련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축구 외적으로도 건강은 중요한 문제다.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자기 몸은 스스로 잘 챙겼으면 좋겠다”며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남기일 감독은 심리적인 대응을 중요시했다. 그는 “광주 FC의 한 선수도 최근 헤딩하다 탈구됐다. 그 선수가 부상 트라우마로 인해 헤딩을 주저할까 걱정이 된다. 저도 재활 트레이너와 함께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선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축구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건강을 해치는 부상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게 무서워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학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어린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고민이 많으실 텐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상으로 한두 달 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학교 여자축구부에서 뛰고 있는 딸을 둔 한 어머니는 딸의 신체조건이 남들에 비해 왜소한 것을 걱정했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다른 학부모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자들의 답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에 대해 김호남은 “신체조건은 필요는 하지만 필수는 아니다”라며 “나도 한때는 장신선수들을 부러워하며 ‘키가 크면 헤딩을 잘할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가 큰 후배가 나에게 와 ‘나는 형처럼 순발력이 빨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분명 자신만의 장점이 있을 것이다. 단점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장점을 더 크게 키웠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윤영길 교수는 신체조건에 대해서는 “유소년 시절에는 체격, 체력 등 신체조건이 경기력의 49퍼센트를 차지한다면 성인이 돼서는 9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10대 후반이 넘어가면 신체조건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수행전략을 세우고 심리적, 전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체조건의 중요성이 나이가 들수록 떨어진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쳐도 근본적으로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 고민이 있다. ‘과연 우리 아들, 딸이 축구를 해서 프로 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선수 중 프로 선수가 되는 비율은 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주변에서도 축구를 시킨다고 하면 다들 반대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누구라도 속 시원하게 해결책을 줄 수는 없지만 강연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진지한 조언을 이어갔다.

기영옥 광주FC 단장은 아들 기성용을 예로 들며 어릴 때부터 축구 이외의 삶을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 단장은 “저는 성용이가 잘 돼서 이런 얘기 한다고 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어릴 때까지는 공부를 병행했다. 성용이를 중학교 1학년 때 호주로 보낸 것도 축구보다는 영어 때문이었다. 영어만 잘 해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학부모들께서도 어린 선수들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 감독은 “제 둘째 아들이 초 1학년인데 축구를 시키려고 맘 먹고 있다”며 “축구를 통해 나중에 스타플레이어나 프로 선수가 되는 것도 중요하고, 기성용을 꿈꾸는 것도 좋지만 저는 다른 이유에서 축구를 권하고 싶다. 축구를 통해 협동심을 배우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선수를 하다가 축구와 관련된 다른 직업을 얻을 수도 있다”며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만큼이나 축구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배우는 이점을 강조했다.
 

 윤영길 한국체대 교수는 이론과 실제를 넘나드는 폭넓은 강연으로 박수 갈채를 받았다.

 

현실 그 너머를 바라보다

여자대표팀의 심리코치를 맡았던 윤영길 한국체대 교수는 축구선수를 자녀로 둔 학부모들의 심리적인 준비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윤 교수는 축구선수로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메시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을 바라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말한 윤 교수는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수많은 선수들을 지켜봐왔는데 은퇴한 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를 보며 ‘젊었을 때 좋은 무대서 뛴 선수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축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축구선수 뿐만 아니라 여러 종목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수없이 봐온 윤 교수는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잠깐에 불과한 선수 생활에 매몰되지 않고 인생 전체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일이 학부모로서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윤 교수는 “한국 선수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축구에 대한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다가 직업선수가 되면 조금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이유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학부모들의 지나친 관심이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윤 교수는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학부모들은 선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윤 교수는 경기력 발전의 3대 요인으로 내적자원, 외적환경, 사회문화 등 세 가지를 꼽으며 앞으로는 윤리의식, 사회공헌 등 사회문화적 가치가 선수 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 도중 심판의 잘못된 판정을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한 독일 공격수 클로제의 예를 들며 학부모들이 선수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을 강조했다.

끝으로 윤 교수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 문구인 ‘생지축지 생이불유(낳고 기르되 소유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강연을 마쳤다. 다양한 비유와 현장 경험을 통해 나온 깊이 있는 강연에 학부모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호남은 선수로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진지한 고민과 소통의 장이 되다

윤 교수의 강연이 끝나고 또다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고 있는 한 아버지는 ‘적은 비용으로도 아이들이 맘껏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어떤 점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부모로서 축구선수를 키우며 누구나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상황에서 제도적인 해결책은 없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됐다.

이에 기영옥 단장은 “광주시의 축구 인프라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개인적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합숙훈련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정 절감 효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곧 대학교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여자축구 선수는 축구선수 이외의 다른 직업을 택한 선수의 사례를 듣고 싶어했다. 이에 대해 김호남은 “내 고등학교 친구들도 나를 빼면 대부분 축구선수를 그만 뒀다. 지도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축구와 관계없는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축구를 통해 인내와 협동심을 배우기 때문에 사회생활에도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축구선수 출신 중 행정가나 트레이너, 전력분석원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실제 사례를 들며 “조금만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축구에서 파생되는 여러 직업을 찾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강의가 이어질수록 학부모들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결국 강연은 예정시간인 3시간을 1시간이나 훌쩍 넘겨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마무리됐다. 강연자와 참석자들은 뜻깊은 강연에 모두 만족감을 드러냈다. 남기일 감독은 “오늘 이 자리에 조언을 해주러 왔지만 오히려 내가 배우고 간다. 학부모들이 한국축구를 이해하고 진지하게 걱정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광주대 선수들을 데리고 행사에 참여한 정평열 광주대 감독은 “뜻 깊은 강연을 통해 우리 선수 뿐만 아니라 유소년과 학부모들이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도 지도자나 학부모를 위한 양질의 강연을 지방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 오명철
사진 = FAphotos
 

 강연자들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