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위원장
“감독은 전술가가 아닌 매니저다”
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은 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큰 능력은 전술이 아닌 관리라고 강조했다.
최고의 전술가와 최고의 감독은 동의어가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 한 경기만 치른다면, 전술가가 승리할 것이다. 최고의 감독은 변수로 가득한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이 이기는 이다. 전술보다는 관리가 중요하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비상'을 이끌었던 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 매니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다.
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하 장 부위원장)은 큰 소리를 내는 남자가 아니다. 과거 한국 축구를 풍미했던 '호랑이 선생님'과는 다른 유형의 지도자다. 2005년 스타 하나 없는 창단 2년 차 팀인 인천 유나이티드를 후기리그 우승, 통합 준우승으로 이끈 방법은 채찍이 아니었다. 물론 완벽한 당근도 아니었다. 장 부위원장은 오랫동안 지도자를 목표로 삼고 정진했고, 자신만의 확고한 지도철학을 정립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도철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게 장 부위원장의 원동력이다. 장 부위원장은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지도철학과 그것을 정립하게 된 이유를 공개했다.
장 부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빨리 지도자를 생각하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 서대문 고가도로 아래 서점에서 '월간축구(당시 축구협회 기관지, 현 베스트일레븐)'를 구매해 읽다가 처음으로 감독이란 직업에 대해 눈을 떴다. "잡지를 읽다가 세계적인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인지를 하게 됐다고 해야 하나? 나도 나중에 한국 축구에 한 획을 긋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훈련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하 장 부위원장)은 큰 소리를 내는 남자가 아니다. 과거 한국 축구를 풍미했던 '호랑이 선생님'과는 다른 유형의 지도자다. 2005년 스타 하나 없는 창단 2년 차 팀인 인천 유나이티드를 후기리그 우승, 통합 준우승으로 이끈 방법은 채찍이 아니었다. 물론 완벽한 당근도 아니었다. 장 부위원장은 오랫동안 지도자를 목표로 삼고 정진했고, 자신만의 확고한 지도철학을 정립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도철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게 장 부위원장의 원동력이다. 장 부위원장은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지도철학과 그것을 정립하게 된 이유를 공개했다.
장 부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빨리 지도자를 생각하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 서대문 고가도로 아래 서점에서 '월간축구(당시 축구협회 기관지, 현 베스트일레븐)'를 구매해 읽다가 처음으로 감독이란 직업에 대해 눈을 떴다. "잡지를 읽다가 세계적인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인지를 하게 됐다고 해야 하나? 나도 나중에 한국 축구에 한 획을 긋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훈련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인천 사령탑 시절 장외룡의 모습.
장외룡이 훈련 일지를 쓰는 이유
장 부위원장은 여전히 일지를 쓰고 있는데, 그 자세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2012년 초, 우연히 중국 광저우에서 장 부위원장(당시 다롄 아얼빈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방에 들어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방 벽이 온통 그림과 글로 채워져 있었다. 전술과 전략 그리고 선수들의 상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벽이 마치 터치스크린 같았다.
지도자에 대한 꿈을 현실적으로 꾸기 시작한 사연은 좀 기구하다. 장 부위원장은 월드컵 출전 경험이 없다. 1987년에 은퇴했다. 장 부위원장이 국가대표로 활동한 시기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다. 1986 멕시코 월드컵의 꿈을 꿨었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메디컬(의학) 부분에 대해 큰 의미를 둔다. 메디컬 스태프의 말을 절대 신뢰한다. 내 얕은 지식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6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 도전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발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무릎에 통증이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기 때문에 아이싱을 하면 낫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새 아이싱을 했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무릎을 살짝 얼려버린 거다. 그래서 통증이 없었던 거지. 그렇게 아침 훈련에 나갔다가 같은 부위에 충격을 받고 큰 부상을 당하게 됐다. 그래서 월드컵의 꿈을 접고 은퇴를 하게 됐다. 월드컵에 선수로 나갈 수 없으니 감독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유소년 지도 경험이 있어야 진짜 지도자
장 부위원장의 지도자 행보는 여느 지도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1987년 대우로얄즈와 1988년 아주대학교 코치를 거쳐 일본으로 떠났다. 장 부위원장은 도스퓨처스(사간도스의 전신)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한다. 장 부위원장은 도스퓨처스에서 유소년 및 하부조직(2군까지)을 총괄하는 감독까지 승진했는데,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 지도철학 중에 가장 첫 번째가 지도자라면 유소년을 꼭 가르쳐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이 기본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게 유소년을 가르칠 때다. '인사이드 패스를 어떻게 가르쳤을 때 아이들이 가장 잘 따라오는가?', '어떻게 팀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가?'와 같은 고민의 답을 아이들에게서 얻어내거나,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한 지도자들은 최상위 단계인 프로에서도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실 문제가 아무리 복잡해도, 문제는 기본이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을 습득하지 않고 바로 최고단계로 갔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축구의 큰 숙제 중 하나가 좋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유소년 지도자부터 차근차근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
장 부위원장은 여전히 일지를 쓰고 있는데, 그 자세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2012년 초, 우연히 중국 광저우에서 장 부위원장(당시 다롄 아얼빈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방에 들어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방 벽이 온통 그림과 글로 채워져 있었다. 전술과 전략 그리고 선수들의 상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벽이 마치 터치스크린 같았다.
지도자에 대한 꿈을 현실적으로 꾸기 시작한 사연은 좀 기구하다. 장 부위원장은 월드컵 출전 경험이 없다. 1987년에 은퇴했다. 장 부위원장이 국가대표로 활동한 시기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다. 1986 멕시코 월드컵의 꿈을 꿨었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메디컬(의학) 부분에 대해 큰 의미를 둔다. 메디컬 스태프의 말을 절대 신뢰한다. 내 얕은 지식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6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 도전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발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무릎에 통증이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기 때문에 아이싱을 하면 낫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새 아이싱을 했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무릎을 살짝 얼려버린 거다. 그래서 통증이 없었던 거지. 그렇게 아침 훈련에 나갔다가 같은 부위에 충격을 받고 큰 부상을 당하게 됐다. 그래서 월드컵의 꿈을 접고 은퇴를 하게 됐다. 월드컵에 선수로 나갈 수 없으니 감독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유소년 지도 경험이 있어야 진짜 지도자
장 부위원장의 지도자 행보는 여느 지도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1987년 대우로얄즈와 1988년 아주대학교 코치를 거쳐 일본으로 떠났다. 장 부위원장은 도스퓨처스(사간도스의 전신)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한다. 장 부위원장은 도스퓨처스에서 유소년 및 하부조직(2군까지)을 총괄하는 감독까지 승진했는데,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 지도철학 중에 가장 첫 번째가 지도자라면 유소년을 꼭 가르쳐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이 기본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게 유소년을 가르칠 때다. '인사이드 패스를 어떻게 가르쳤을 때 아이들이 가장 잘 따라오는가?', '어떻게 팀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가?'와 같은 고민의 답을 아이들에게서 얻어내거나,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한 지도자들은 최상위 단계인 프로에서도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실 문제가 아무리 복잡해도, 문제는 기본이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을 습득하지 않고 바로 최고단계로 갔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축구의 큰 숙제 중 하나가 좋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유소년 지도자부터 차근차근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정수는 장외룡 기술부위원장이 자신의 축구 철학을 어기게 한 유일한 선수다.
전술만 보면 반쪽짜리 감독
장 부위원장은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을 습득해서 팀을 이끄는 매니저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감독의 전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변수 속에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지원스태프를 아울러서 하나로 만드는 능력이라는 이야기다. 장 부위원장은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는 감독을 헤드코치가 아닌 매니저로 부르는 일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유나이티드를 처음 맡아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아이들의 심리적인 부분이다. 우리 팀과 다른 팀의 전력, 전술 분석은 이미 2004년 베르너 로란트 감독을 보좌하면서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다른 팀에 비해 전력이 크게 뒤지지 않는데, 계속 지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답은 심리적인 부분에 있었다. 당시 인천에 있던 아이들 대부분은 다른 팀에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어딘가 위축되거나 구부러져 있었던 거다. 그래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힘을 썼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려 했다. 훈련 상대를 고를 때도 승리할 수 있는 팀으로 골랐고, 훈련을 해도 가능성이 큰 쪽으로 유도했다. 예를 들어 수비가 압박해서 공을 빼앗는 훈련을 하면, 공격 숫자에 비해 수비 숫자를 상대적으로 늘려 수월하게 공을 빼앗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점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정수 같은 선수가 그 완벽한 예다. 정수는 실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런데 FC 서울에서는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마음이 많이 안 좋아졌다. 그런데 긍정적인 기운을 받으면서 실력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정수에게는 그 이후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틀림없었으니까."
장 부위원장은 팀 분위기를 올려놓은 뒤에 몇몇 선수들을 특별 관리했다. 선수단 전체는 주장 임중용이 지휘하게 했다. 자신은 팀을 비상시킬 수도 있고, 침몰시킬 수 있는 일군의 선수들 일명 ‘시한폭탄’들을 돌봤다. 장 부위원장은 "많은 지도자들이 잘하는 선수들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게 지도자의 숙제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잘하는 선수들은 그냥 둬도 잘 한다. 아예 실력이 떨어진 선수들도 열심히 한다. 문제는 선발과 교체를 오고 가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은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선발과 교체를 오가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기 쉽다. '내가 저 선수보다 잘하는데, 왜 선발로 쓰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력보다는 불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선수들을 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어루만져줘야 한다. 무엇이 부족한지 좋은 방식으로 가르쳐주고, 선발에 들지 못했을 때는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이런 층의 선수들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팀이 어려워질 수 있다. 2005년에는 이런 부분이 잘 됐다.“
장 부위원장은 코칭스태프와 의무스태프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선수들을 관리할 때 코치들과 의무 트레이너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장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감독이 한국선수들을 어루만질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한 구단 측에서 라돈치치 등 외국인 선수들을 잘 돌봐줬기에 좋은 성적이 날 수 있었던 거라고.
부상 선수는 절대 기용하지 마라
장 부위원장이 매니저로서 가지고 있는 철칙 중에 하나는 앞서 언급한 의료 관련 부분이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아픈 선수를 쓰지 않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감독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 부상을 당한 선수를 기용하면 선수의 몸은 물론 팀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팀 닥터 혹은 의무 트레이너가 'NO'라고 말한 선수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나도 아파서 선수 생활을 그만뒀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을 후배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나는 의료지식이 없어서 그랬다. 알면서도 아픈 선수를 기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수 생명이 걸린 일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선수를 쓰면 언젠가는 탈이 나기 마련이다. 뭐든지 길게 보고 가야 한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K리그, 아니 승부의 세계에서는 지도자의 철학을 지키기 어렵다. 당장의 성적이 지도자의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장 부위원장도 딱 한 번 자신의 철학을 어기고, 현실을 따라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서울과의 경기였다. 그런데 정수가 부상을 당해서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정수가 국가대표팀 이야기가 막 나오던 시기였기 때문에 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교체 명단에 넣어놨었다. 그런데 후반에 우리가 3-2로 이기고 있던 시기에 (김)학철인가 누군가 센터백이 부상을 당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정수가 자기가 뛸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정수를 넣었는데, 5분 만에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저러다 크게 다치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비교적 충돌이 적은 최전방으로 올려 보냈다. 그 뒤로 다시는 아픈 선수를 내보내지 않았다."
장 부위원장은 자신의 지도철학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보탰다. 지도자들이 철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지도자가 없다는 이야기. 장 부위원장은 "좋은 지도자를 키우려면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좋은 선수도 나온다. 유소년 육성의 목적은 당장의 성적이 아니라 프로에서의 활약이다. 그 부분을 제도적으로 고쳐줘야 지도자와 선수가 함께 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장 부위원장이 지금 그 위치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 부위원장은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파주에서 훈련 중인 유니버시아드대표팀을 보러 나섰다. 장 부위원장은 이제 선수가 아닌 제도를 돌보고 있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7월호 '최고의 감독'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 = 류청
사진 = FAphotos
장 부위원장은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을 습득해서 팀을 이끄는 매니저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감독의 전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변수 속에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지원스태프를 아울러서 하나로 만드는 능력이라는 이야기다. 장 부위원장은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는 감독을 헤드코치가 아닌 매니저로 부르는 일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유나이티드를 처음 맡아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아이들의 심리적인 부분이다. 우리 팀과 다른 팀의 전력, 전술 분석은 이미 2004년 베르너 로란트 감독을 보좌하면서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다른 팀에 비해 전력이 크게 뒤지지 않는데, 계속 지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답은 심리적인 부분에 있었다. 당시 인천에 있던 아이들 대부분은 다른 팀에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어딘가 위축되거나 구부러져 있었던 거다. 그래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힘을 썼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려 했다. 훈련 상대를 고를 때도 승리할 수 있는 팀으로 골랐고, 훈련을 해도 가능성이 큰 쪽으로 유도했다. 예를 들어 수비가 압박해서 공을 빼앗는 훈련을 하면, 공격 숫자에 비해 수비 숫자를 상대적으로 늘려 수월하게 공을 빼앗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점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정수 같은 선수가 그 완벽한 예다. 정수는 실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런데 FC 서울에서는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마음이 많이 안 좋아졌다. 그런데 긍정적인 기운을 받으면서 실력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정수에게는 그 이후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틀림없었으니까."
장 부위원장은 팀 분위기를 올려놓은 뒤에 몇몇 선수들을 특별 관리했다. 선수단 전체는 주장 임중용이 지휘하게 했다. 자신은 팀을 비상시킬 수도 있고, 침몰시킬 수 있는 일군의 선수들 일명 ‘시한폭탄’들을 돌봤다. 장 부위원장은 "많은 지도자들이 잘하는 선수들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게 지도자의 숙제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잘하는 선수들은 그냥 둬도 잘 한다. 아예 실력이 떨어진 선수들도 열심히 한다. 문제는 선발과 교체를 오고 가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은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선발과 교체를 오가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기 쉽다. '내가 저 선수보다 잘하는데, 왜 선발로 쓰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력보다는 불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선수들을 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어루만져줘야 한다. 무엇이 부족한지 좋은 방식으로 가르쳐주고, 선발에 들지 못했을 때는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이런 층의 선수들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팀이 어려워질 수 있다. 2005년에는 이런 부분이 잘 됐다.“
장 부위원장은 코칭스태프와 의무스태프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선수들을 관리할 때 코치들과 의무 트레이너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장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감독이 한국선수들을 어루만질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한 구단 측에서 라돈치치 등 외국인 선수들을 잘 돌봐줬기에 좋은 성적이 날 수 있었던 거라고.
부상 선수는 절대 기용하지 마라
장 부위원장이 매니저로서 가지고 있는 철칙 중에 하나는 앞서 언급한 의료 관련 부분이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아픈 선수를 쓰지 않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감독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 부상을 당한 선수를 기용하면 선수의 몸은 물론 팀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팀 닥터 혹은 의무 트레이너가 'NO'라고 말한 선수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나도 아파서 선수 생활을 그만뒀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을 후배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나는 의료지식이 없어서 그랬다. 알면서도 아픈 선수를 기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수 생명이 걸린 일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선수를 쓰면 언젠가는 탈이 나기 마련이다. 뭐든지 길게 보고 가야 한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K리그, 아니 승부의 세계에서는 지도자의 철학을 지키기 어렵다. 당장의 성적이 지도자의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장 부위원장도 딱 한 번 자신의 철학을 어기고, 현실을 따라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서울과의 경기였다. 그런데 정수가 부상을 당해서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정수가 국가대표팀 이야기가 막 나오던 시기였기 때문에 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교체 명단에 넣어놨었다. 그런데 후반에 우리가 3-2로 이기고 있던 시기에 (김)학철인가 누군가 센터백이 부상을 당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정수가 자기가 뛸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정수를 넣었는데, 5분 만에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저러다 크게 다치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비교적 충돌이 적은 최전방으로 올려 보냈다. 그 뒤로 다시는 아픈 선수를 내보내지 않았다."
장 부위원장은 자신의 지도철학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보탰다. 지도자들이 철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지도자가 없다는 이야기. 장 부위원장은 "좋은 지도자를 키우려면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좋은 선수도 나온다. 유소년 육성의 목적은 당장의 성적이 아니라 프로에서의 활약이다. 그 부분을 제도적으로 고쳐줘야 지도자와 선수가 함께 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장 부위원장이 지금 그 위치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 부위원장은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파주에서 훈련 중인 유니버시아드대표팀을 보러 나섰다. 장 부위원장은 이제 선수가 아닌 제도를 돌보고 있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7월호 '최고의 감독'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 = 류청
사진 = 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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