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상경대학을 선택한 축구선수 정해상 대표

용의꿈 2015. 8. 18. 14:20

 

상경대학을 선택한 축구선수 정해상 대표

축구선수라고 해서 축구에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다. 축구로 최고가 될 수 없다면 다른 길을 찾을 줄도 알아야 한다. 축구선수 출신으로 중견기업의 CEO가 된 정해상 대표의 조언을 들어보자.

상경대학을 선택한 축구선수

중견기업 전문경영인(CEO)이라면 대부분 유학파이거나 최소한 명문대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를 연상하기 쉽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축구선수 출신은 CEO와 가장 먼 성장 배경이다. ‘운동하는 애’와 ‘공부하는 애’가 철저히 분리돼 있는 한국에서 스포츠 선수가 경영인으로 성장하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정해상 넵스(NEFS) 대표이사는 그래서 독특한 경우다. 국내 대표적 종합가구 브랜드 중 하나인 넵스에 정 대표가 CEO로 취임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정 대표는 한양공고와 단국대를 거친 전문 축구선수였다. K리그 ‘어시스트 달인’으로 기억되는 강득수가 고교 동창이다. 단국대 재학중이던 1981년에는 추계연맹전에서 득점하며 우승에 일조했다. 최고까진 아니지만 잘나가는 선수였고, 축구로 한 우물을 팠어도 꽤 좋은 선수가 됐을 법한 인재였다. 그러나 정 대표는 축구부원끼리 놀러 다니는 것보다 다른 친구들의 소풍에 따라가는 것이 좋았다. 축구는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도 정 대표는 축구계 밖에 관심이 많은 특이한 학생이었다. 다른 선수들처럼 체육 관련 학과로 진학하는 대신 상경대학을 골랐다. 훈련 와중에도 수업을 꼬박꼬박 챙겨 들었다. 그의 튀는 행동에 주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보였다. “훈련 때문에 매번 강의마다 조금 일찍 나가도 되겠냐”는 정 대표의 부탁에 한 교수는 “그럴 거면 그냥 축구나 해라”라며 핀잔을 줬다. 편견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는 공부를 계속했고, 이런 노력이 축구 이후의 인생을 열어 줬다.

대학 졸업 후 공군사관학교 축구 교관을 거쳐 실업 팀 한일은행에 입단한 정 대표는 28세 나이에 이른 은퇴를 택했다. 그때부터 직장 생활이 시작됐다. 윤활유 생산관리직으로 회사원 생활을 시작해 영업직 등 여러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2002년 이생그룹에 입사했고 2006년 넵스 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넵스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업과 조직 관리 능력을 인정받은 정 대표에게 넵스를 살려보라는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축구선수 출신 CEO의 히딩크 식 경영

넵스는 정 대표 취임 이후 흑자 기업으로 전환, 지금은 연매출 1100억 원이 넘는(한국주택가구협동조합 발표) 한국 10대 가구업체로 성장했다. 고급화 전략으로 주상복합과 고급빌라 등에 주로 가구를 납품해 누적 25만 세대가 넵스 가구를 쓰고 있다. 2012년 국내 가구회사 최초로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주방가구를 출품하기도 했다. 처마와 단청 등 한옥의 미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미래 주거 환경에 최적화된 구조를 연구해 한국산업디자인협회(KAID) 한국디자인대상 등을 수상했다.

정 대표는 축구선수 출신으로서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의 행보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스스로 학벌과 지식은 부족하다고 진단하고, 축구부 생활을 통해 익힌 대인관계 요령과 체력을 장점으로 삼았다. 회사원 생활 초창기엔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읽기 어려워 조카에게 일일이 한글로 독음을 써 달라고 부탁한 후 통째로 외워버렸다. 가지런한 치아를 부각시킬 수 있는 표정을 연습해 호감가는 미소를 ‘개발’했다. 그의 좌우명은 ‘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남자다’라는 절실한 문장이다.

흑자 경영을 위한 정 대표의 비결은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비결로도 알려진 ‘선택과 집중’이었다. 무리한 저가 수주를 지양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프로젝트만 잘 골라 참여하며 최대한의 수익을 올렸다. 전 사원의 멀티플레이어화(化)도 히딩크 감독의 방식과 비슷하다. 경영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강점인 영업 업무를 멈추지 않았고, 사원들에게도 한 명이 빠지면 다른 사람이 바로 대체할 수 있도록 융통성 있는 업무 능력을 요구했다.

선수 경험을 장점으로 만들어라

정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후배 축구인들에 대한 조언도 건넸다. 그는 “나처럼 끈기 있게 도전하면 축구 밖의 분야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데, 그런 후배가 드물어 안타깝다”고 했다. 정 대표는 관리와 경영 능력은 학력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지론에 따라 모교 단국대의 운동선수 중 사무직으로 쓸 만한 인재를 찾기도 했다. 고졸 직원을 선발할 때도 성적을 배제하고 가능성을 보는 선발을 도입한 적이 있었다. 애초에 시작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신과 같은 경영인은 나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 대표는 축구선수 출신의 강점을 더 세부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축구는 굉장히 지능적이고 심리적인 스포츠다. 공부만 하는 사람은 혼자 보낸 시간이 길지만, 축구 선수는 사회생활을 오래 경험한다. 또 상대 선수가 어떻게 움직일지 판단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경기의 모든 과정이 심리전이다. 다 영업에 필요한 덕목이다. 처음 시작할 땐 지식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곧 훌륭한 사원이 될 수 있다. 운동 선수 출신에게 취업문이 더 열렸으면 좋겠다. 은퇴한 선수의 생계가 축구계에서도 큰 문제이지 않나.”

다만 세상의 편견과 맞서려면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 대표의 지론이다. 선입견을 깨고, 화려한 학위를 가진 엘리트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이기며 사업가로 성공하려면 그만큼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능력만 있다면 언젠가 인정받는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면, 남들이 그 특별함을 알아볼 때까지 참고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만 거치면 남들보다 더 인정받을 수 있다.” 언젠가 등장할 축구선수 경영인 후배에게 던지는 조언이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8월호 '축구인 성공시대'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 = 김정용(풋볼리스트)
사진 =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