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분데스리가에 배우자 中] '속'이 다른 유스 시스템, 월드컵 우승 원동력

용의꿈 2014. 10. 21. 16:44


[분데스리가에 배우자 中] '속'이 다른 유스 시스템, 월드컵 우승 원동력


송낙현 감독

MBC꿈나무축구재단이 뽑은 12세 이하 유소년 선발을 이끈 송낙현(오른쪽 두 번째) 총감독이 2일(한국시간) 레버쿠젠 U-12와 원정 경기에서 한국 유소년 선발을 모아놓고 지시하고 있다. 레버쿠젠(독일)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MBC꿈나무축구재단이 뽑은 12세 이하(U-12) 유소년 선발을 이끌고 지난 2일(한국시간)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U-12와 원정 경기를 치른 송낙현(인천 그린타이거즈) 총감독은 “레버쿠젠이 프로 선수처럼 경기하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김백관(울산 U-12) 코치도 “어렸을 때부터 천연잔디에 익숙해진 선수들이어서 그런지 공간 활용을 잘하고, 기술적으로도 훌륭하다”고 감탄했다. 유소년 선발은 지난달 26일부터 5일까지 그리스하임, 마인츠, 레버쿠젠 등 3개 팀과 친선 경기에서 1승 2패를 기록했다. 단순히 결과를 떠나 독일에서 뛰는 또래 선수와 겨뤄보며 경험을 쌓은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그 만큼 국내와 확연히 다른 환경에 허탈해했다. 주장이자 수문장인 송민규(PEC)는 “독일 친구들의 기량도 훌륭하지만, 투쟁심에 놀랐다”며 “프로 선수 못지 않은 훈련장에서 즐겁게 운동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한 목소리를 낸 건 ‘유스 시스템의 완성’이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의 우승을 일궈낸 핵심 요인이란 것이다. 학년제였던 한국 유스팀도 최근 들어 연령대 팀으로 나뉘어 운영하는 등 선진화됐지만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유소년 선발이 상대한 세 팀만 보더라도 U-7에서 U-23까지 더 세분화돼 있다. 프로팀의 훈련이 끝나는 오후 4시 이후 유스팀이 훈련한다. 마인츠 레버쿠젠 뿐 아니라 5부리그에 속한 그리스하임도 유소년을 위해 7대7, 8대8, 9대9, 11대11 등 4개의 천연잔디구장을 구비했다. 연령별 팀이 동일 시간에 훈련하기도 한다. 코치진끼리 선수에 대한 정보와 훈련 프로그램을 공유하려는 목적이다. 또 프로 1군 감독이 유스팀까지 정기적으로 점검하기도 한다. 유스팀의 지도자에게 일부 선수를 물어보고, 훈련 방법까지 챙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유스팀의 훈련 방향이 프로를 쫓아가게 된다. 전술과 선수 성향이 프로 1군과 유사하게 이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김 코치는 “국내 프로 유스 팀도 성인 팀에 따라가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내 정서는 유스 때부터 승부의 세계에 노출돼 있다. 장기적으로 키우려고 해도 이기기 위한 선수 선발, 혹사 등이 발생하다 보니 더 좋은 선수가 성장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레버쿠젠 유소년 경기장

MBC꿈나무축구재단이 선발한 2014 우수선수 독일연수 대상자에 뽑힌 14명의 유소년 선발이 2일(현지시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레버쿠젠에서 레버쿠젠 U-12와 친선경기하고 있다.


슬라보미르 챠르니에츠키

슬라보미르 챠르니에츠키 레버쿠젠 12세 이하(U-12) 유소년 팀 트레이너가 2일(현지시간) 독일 레버쿠젠에서 열린 MBC꿈나무축구재단 선발 한국 U-12 유소년 팀과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하고 있다.



분데스리가 클럽은 연령별로 배워야 할 단계에 집중한다. U-12 이하는 철저히 기본기, 이후엔 체력과 전술 등 연령과 발달상황에 맞춘다. 가능한 여러 경기포지션에서 경험하도록 하고, U-16 이후부터 포지션 전문화를 강조한다. 대회 출전은 경기 경험을 익히는 수단 그 이상도 아니다. 또 코치진이 선수 앞에서 시범 뿐 아니라 훈련에 동참해 땀을 흘리는 게 보편적이다. 슬라보미르 챠르니에츠키 레버쿠젠 U-12 트레이너는 “유소년은 축구에 관해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시기”라며 “(코치진이)함께 하면서 이해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훈련이나 경기 후 선수와 코치진의 토론도 일상적인 일이다. 국내에서 일부 지도자가 뒷짐지고 유소년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과 다른 풍경이다. 경기장 밖에서는 아무리 어린 선수라고 해도 수평적 관계일 뿐이다. 유소년은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고, 지도자도 선수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이 지향하는 축구 교육철학 중 또 하나는 학교 교육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인츠는 근거리에 있는 학교와 협조해 수업시간을 조절해 운동하면서도 수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인성교육도 꽤 중시하는데, 팀 정신과 페어플레이의 근간으로 여기고 있다. 세바스티안 예거 마인츠 트레이너는 “선수들의 기량 못지 않게 인성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관리한다. 유소년 때 경기에서 실수하는 건 몰라도 인성 부분은 용납하지 않는다”며 “페어플레이를 하며 이겼을 때 진정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칭찬을 많이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건 건전한 인성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이 모든 게 선수와 감독의 관계를 넘어 상대 선수와 심판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마인츠의 교육 철학이다. 자연스럽게 유스팀 지도자는 프로 못지 않은 대우와 존중을 받는다. 유소년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유소년 마인츠

한국 12세 이하(U-12) 유소년 선발이 30일(한국시간) 독일 헤센주 그리스하임 헤겔스버그 스타디온에서 열린 U-12 9인제 축구 3파전(3팀이 한 경기장에서 로테이션으로 진행) 대회에서 마인츠와 경기하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라고 꼬집은 송 감독은 “국내에선 운동을 그만두면 할 게 없는 선수가 많다. 협회에서 주말리그 제도를 도입해서 ‘공부하는 선수’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아이들을 승부의 세계에 빠뜨리는 환경에선 나아지기 어렵다. 운동에만 몰두하니 축구에 모든 것을 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코치도 “학부모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즐겁고, 놀이 같은 축구를 국내 지도자도 왜 안하려고 하겠는가”라며 “환경을 조성해도 ‘왜 경기 안하고 다른 것 하느냐’며 전학하는 사례도 있다”고 꼬집었다. 또 “학교도 성적을 내야만 팀을 유지한다고 압박한다”고 말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유소년 교육을 위한 인프라와 제도 보완은 이뤄졌지만, 성적에 올인하는 국내 유소년 축구 문화는 여전히 장애물이란 것이다. 선수 개별적으로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수립하기 어렵다. 선수 수급도 줄어들고 있다. 반면 현장에서 본 분데스리가 유스 팀은 단순히 프로 선수를 길러내는 게 아니다. 스포츠와 인성이 어우러진 교육의 장 구실을 한다. 재능 있는 선수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고, 축구화를 벗은 자도 무리 없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녹아든다. 

마인츠·레버쿠젠(독일)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