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에서 배우자 上]한국 유망주 5부로 떠난 사연…독일형 통합리그
| 독일 프로축구 5부리그 그린스하임 17세 이하 유스팀에서 뛰는 한국인 미드필더 김주일이 30일(한국시간) 독일 헤센주 그린스하임 헤겔스버그 스타디온에서 스포츠서울 취재진을 향해 파이팅하고 있다. 그린스하임(독일)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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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5부리그 그리스하임 17세 이하(U-17) 유소년 팀에서 뛰는 미드필더 김주일은 2년 전만해도 스페인 담 15세 이하 팀에서 뛰며 동갑내기 이승우 장결희(이상 바르셀로나)와 맞대결을 벌였다. 유럽에서 축구하고 싶다는 뜻을 둔 그의 도전에 가족도 지지했다. 그러다가 베를린에 지인을 둔 아버지의 권유로 독일 무대로 옮겼다. 2부에 속한 다름슈타트 등 유명 클럽도 러브콜을 보냈다. 그런데 왜 5부 팀을 선택했을까. 지난달 30일(한국시간) 헤센주 그리스하임 헤겔스버그 스타디온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그는 “눈 앞에 화려한 것보다 내 나이와 위치에서 성장할 팀을 보게 됐다. 독일 하부리그 시스템은 완벽하다. 1906년 창단한 그리스하임은 수준 높은 축구를 하고, 코치진과 선수간의 교육 프로그램도 잘 돼 있다”고 웃었다. 취재진이 현장에서 보니 5부 팀에도 유소년을 위해 7인제와 8인제, 9인제, 11인제 천연잔디구장 6면을 구비했다. 1군 경기 입장권이 5~7유로 정도 하는데, 1군 경기 때 2000여 명 가까이 들어차는 등 인기몰이다. 연고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이 너나 할 것 없이 스폰서로 나선다. 시와 구단의 협력이 잘 이뤄져 성인 뿐 아니라 유소년에 대한 지원이 알차다. 지난 시즌 12세 이하 팀이 헤센주 분데스리가 유소년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비결이기도 하다.
3년 전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의 선택도 받지 못한 정승화(26)도 올 시즌 5부로 강등한 벨기쉬 글라드바흐 1군에서 오른쪽 주전 수비수로 뛰고 있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정상급 대학팀 또는 내셔널리그 수준의 축구를 한다”고 밝힌 그는 “당시만 해도 K리그 챌린지(2부)가 없었으므로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선수가 선택할 팀이 제한적이었다. 축구를 그만둘까 고민하다가 지인 소개로 독일에서 테스트하게 됐다. 하부리그까지 워낙 기반이 탄탄하다 보니 도전할 팀이 많더라. 프랑크푸르트 등 여러 구단을 돌다가 벨기쉬 글라드바흐에 왔는데, 환경이나 모든 면에서 운동하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4부에선 1부의 주력 선수와 뛰었다고 한다. “레버쿠젠 도르트문트 등 2군 선수가 4부에서 뛴다. 수준이 꽤 높다. 나랑 뛴 선수가 다음주에 챔피언스리그에 나오기도 하더라.”
| 그리스하임 9대9 유소년 구장에서 17세 이하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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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쉬 글라드바흐 수비수 정승화(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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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생활은 단순히 축구만은 아니다. 선수 은퇴 후 미래를 그릴 만한 장치가 많다. 정승화는 “독일은 학비가 전액 무료인 게 장점이다. 자국인 뿐 아니라 세계 우수한 자원을 독일에서 키우고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정서다”라며 “나 역시 쾰른 체육대학 등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교에 도전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해 소속팀 연령대 선수를 지도하고 싶다. 축구만 보더라도 프로, 아마추어 등 일자리가 풍성하므로 내 노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이선구 포어베이츠 슈포호98 코치도 일반 학교 교사가 아닌 현장 축구 지도자의 삶을 원해 독일에 온 케이스다. “한국에선 선수 출신이 아니면 지도자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곳에서 독일축구협회 C급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UEFA B급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프로가 아니더라도 하부리그 팀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좋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최근엔 일본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C급을 따면 일본축구협회에선 2급으로 바꿔준다더라”고 강조했다.
| 이선구 코치가 딴 독일축구협회 C급 지도자 자격증. 제공 | 이선구 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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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3부까지 프로다. 분데스리가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아마추어인 레기오날리가(4부)는 북부, 북동부, 서부, 남서부, 바이에른 등 5개 권역으로 나뉜다. 권역별로 무려 16~20개 팀이 속해 있다. 오버리가(5부)는 4부에서 5개 권역이 더 세분화한다. 각 권역에서 승격권에 오른 팀이 4부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6부 이하도 앞선 상위 리그를 더 세분해 리그를 구성해 승강제를 연다. 전체로보면 독일축구협회는 13부리그를 보유하고 있고, 등록된 팀수만 3만 여개가 훌쩍 넘는다. 40만명 가까운 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거둔 독일의 저력도 하부리그에서 비롯됐다. 월드컵 통산 16골로 새 역사를 쓴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7부리그에서 시작한 대기만성형 선수. 위르겐 클롭 도르트문트 감독, 토마스 투헬 전 마인츠 감독 등 명장들도 선수 시절엔 하부리그를 전전했지만, 알찬 경험으로 꽃을 피웠다.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승격팀’ 파더보른의 안드레 브라이텐라이터 감독 역시 4부에서 지도자를 시작했다. 그리스하임 한 관계자는 “단순히 독일 경제력이 뛰어나 하부리그가 탄탄한 게 아니다.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스포츠가 참여하는 통합리그,그리고 이를 이끌어가는 축구협회 등 상위 조직의 선진적인 행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스하임(독일)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