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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8년 만에 AG 금메달.. 통산 4회 우승

용의꿈 2014. 10. 3. 10:01

한국, 28년 만에 AG 금메달.. 통산 4회 우승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대표팀이 북한과의 연장전 혈투 끝에 승리 한 뒤 기뻐하고 있다.

승부차기의 기운이 감돌 무렵인 연장 후반 14분, 임창우(대전 시티즌)의 한 방이 터졌다. 아시안게임 잔혹사가 드디어 끝났다. 이광종호가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이겼다. 북한의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에 밀려 고전하던 한국은 연장 후반이 끝날 무렵 임창우가 문전 혼전 상황에서 골망을 흔들어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1970, 1978, 1986 아시안게임에 이어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안방에서 달성했다. 한국은 이란과 대회 최다 우승 타이를 이뤘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으며 포효했다. 28년 만의 금메달은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이번 대표팀은 여러 가지 악재를 이겨내고 값진 금메달을 수확했다. 28년 만의 금메달 획득의 의미를 짚어봤다.

역대 최약체로 이룬 금메달

“이번 대표팀은 역대 아시안게임 멤버 중 최약체다. 국가대표 선수도 거의 없지만 조직력과 활동량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 점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4강과 결승에서도 개인 능력이 아니라 팀으로서, 조직력과 열정으로 우리 홈에서 꼭 이기자고 후배들에게 주문할 것이다.”

일본과의 8강전을 마치고 공격수 김신욱(울산)이 한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정강이뼈 부상을 당한 이후 태국과의 4강전까지 4경기 동안 줄곧 출장하지 못했던 김신욱은 벤치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28년 만의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 20명의 태극전사들은 모두 하나가 됐다.

김신욱의 말처럼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로 불릴 만했다. 한국이 마지막으로 아시안게임 정상에 섰던 1986년 서울 대회 때는 변병주, 조광래, 최순호, 허정무, 김주성 등 한국 축구의 역사를 빛낸 쟁쟁한 멤버들이 주축을 이뤘다. 당시에는 아시안게임에 성인대표팀이 출전했다.

또한 이번 대표팀에는 2002년 이동국(전북), 2006년 이천수(인천), 2010년 박주영(알샤밥)처럼 걸출한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 자원도 없었다(2002 부산 대회 이후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는 23세 이하 선수가 출전한다는 연령제한 규정이 생겼다). 차출 여부로 큰 관심을 모았던 손흥민은 소속팀 레버쿠젠의 반대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중원의 핵심 역할을 맡아줄 것으로 예상됐던 이명주(알아인)도 손흥민과 같은 이유로 들어오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흥민의 빈 자리를 메울 윤일록(FC서울)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오른 무릎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최소 한 달의 재활이 필요한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엔트리 숫자(20명)가 적은 데다 대회가 시작된 이후엔 선수를 교체할 수 없어 윤일록의 공백은 뼈아팠다. 하지만 윤일록 대신 기회를 잡은 이용재(V바렌 나가사키)가 홍콩과의 16강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3-0 승리에 일조했다. 빈약한 골 결정력은 매 경기 도마에 올랐지만 대표팀은 밀집수비를 펼치는 팀들을 상대로 매번 승리라는 결과물을 얻어냈다.

역대 최약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선수는 K리그 챌린지 대전 시티즌의 임창우였다. 그는 이번 대표팀에서 유일한 2부리그 선수였다. 임창우는 “내가 맡은 오른쪽 측면 수비가 약점이라는 말이 나왔다. 멤버가 안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모두 공감하는 얘기”라면서도 “대신 우리는 조직력이 강점이다.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뛰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금메달 키워드는 ‘헌신’과 ‘미팅’

이번 대표팀의 주장은 장현수(광저우 부리)가 맡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선수단을 이끈 선수는 와일드카드로 뽑힌 박주호(마인츠)와 김신욱이었다. 이들은 자신보다 동료들을 더 아끼고 챙기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주호는 그라운드에서만 선수단을 독려하는 게 아니었다. 라커룸에서 코칭스태프가 미처 지적하지 못하는 사항을 일일이 선수들에게 알려주며 선수들을 일깨웠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쌓은 큰 경기 경험, 나이에서 우러나오는 노련미를 바탕으로 한 조언은 후배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김신욱은 공격수들의 코치를 자처했다. 김신욱은 짬이 나는 대로 이용재에게 공격수로서의 경험과 타깃맨의 역할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용재는 홍콩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김신욱에게 달려가 안겼다. 또한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한 선수답게 부담감을 털어내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노하우를 시시때때로 이야기해줬다.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토론의 장을 벌였다. 공식적인 선수단 미팅 외에도 삼삼오오 어울려 서로의 노하우를 터놓고 공유하는 것이다. 북한과의 결승전을 앞두고는 전남의 3총사 이종호-김영욱-안용우가 휴식시간을 이용해 한 자리에 모여 북한의 전력에 대해 한바탕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주장 장현수는 일본과의 8강전을 마친 뒤 “여기까지 왔는데 선수들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잡고 있다. 틈이 보이지 않게 희생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장을 필두로 와일드카드 형님과 아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보다는 팀을 위해 헌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7경기 무실점 전승 우승, 역사로 남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무실점 전승 우승은 이전까지 딱 한 번 있었다. 초대 대회인 1951년 뉴델리 대회에서 개최국 인도가 3승(7득점 무실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남자축구 종목에는 인도를 비롯해 일본, 이란, 미얀마,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등 6개국만 참가했다.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불참했다. 사실상 한국의 무실점 전승 우승 기록이 사상 최초로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값지다. 한국은 7경기 동안 13득점 무실점을 기록했다.

와일드카드로 뽑힌 골키퍼 김승규(울산)의 역할이 컸다. 김승규는 토너먼트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일본과의 8강전, 태국과의 4강전에서 동물적인 선방을 펼쳤다. 포백 수비라인은 대회가 지날수록 안정감을 더했다. 좌우 풀백으로 나선 김진수(호펜하임)와 임창우는 본연의 임무인 수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측면 공격의 파괴력을 더했다. 중앙 수비 듀오인 장현수와 김민혁(사간도스)은 두터운 철벽을 형성했다. 특히 장현수는 일본과의 8강, 태국과의 4강전에서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결승 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성적(괄호 안은 득점자)>

^조별리그
1차전 말레이시아 3-0 승(임창우, 김신욱, 김승대)
2차전 사우디아라비아 1-0 승(김승대)
3차전 라오스 2-0 승(이종호, 김승대)

^토너먼트
16강 홍콩 3-0 승(이용재, 박주호, 김진수)
8강 일본 1-0 승(장현수)
4강 태국 2-0 승(이종호, 장현수)
결승 북한 1-0 연장 승(임창우)

인천=오명철
사진=FAphotos
이재성은 전반 상대 선수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깨 부상을 당해 김영욱과 교체됐다. 하지만 대회 기간 그는 숨겨진 영웅이었다.
이종호는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북한 수비진을 괴롭혔다.
인천아시안게임 주장 장현수가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뽑혀 형님으로서 역할을 다해준 박주호
조별예선에서 3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한국이 16강 진출하는데 큰 힘을 보탠 김승대
연장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킨 뒤 기쁨의 세리머니를 펼치는 한국선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