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 토너먼트 대회에서 승리는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무승부만 기록해도 8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
나 역시 과거 이런 경기를 몇 차례 경험했다. 분명 유리한 상황이였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우리가 비기기만 해도 괜찮다면 상대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다. 궁지에 몰리면 절박해진다. 자연스레 한발 더 뛰게 되고 그렇게 모인 한발이 결국 차이를 만든다.
어려운 경기였다. 궁지에 몰린 멕시코는 경기 내내 뛰어난 개인 기량을 선보이며 한국을 압도했다. 90분의 경기 시간 중 권창훈의 골이 터진 후반 31분에만 한국 선수들이 웃을수 있었다. 멕시코는 절박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 대한 동기부여가 강한 한국 선수들의 마음이 상대의 절박함보다 컸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한 차례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
# 킥오프 휘슬이 울리면 최대한 빠르게 경기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선수들은 경기 전 팀 미팅을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경기 상황을 상상하며 킥오프를 기다린다.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상대 선수의 스타일, 자신의 컨디션, 경기장 분위기, 잔디 상태 등 경기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오늘 멕시코 전이 열린 브라질리아 마네 가린샤 스타디움은 1,100미터 고지대에 위치했다. 공의 흐름과 호흡 등 선수들이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았다. 그 날 경기의 컨셉에 따라 초반 접근법이 달라진다. 한국은 급할 것이 없었다. 공을 오래 갖고 있을수록 우리 스스로 템포를 조절 할 수 있었고 신태용 감독 역시 경기 초반 그런 흐름을 원했을 것이다.
축구가 늘 예상대로 흘러가면 감독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킥오프 후 경기 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한국이 아닌 멕시코 였다. 지역 별로 공을 잘 관리했고 공을 잘 순환시켰다. 경기의 리듬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경기 초반 리듬을 만들기 어렵다면 동료들과 소통을 통해 머릿속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좋다.
“볼 소유가 아닌 볼 공유를 해야 한다.”
볼 소유와 볼 공유는 다른 개념이다. 볼 소유는 단순히 공을 갖고 있는 것이지만 볼 공유는 팀원 전체가 공과 함께 생각까지 공유하는 것이다.경기 초반 뿐 아니라 어느 시간 대나 경기의 리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볼 공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볼 공유의 핵심은 필드 위 11명 전체가 플레이에 함께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에서 가장 멀리 있는 선수도 반드시 관여되어야 한다. 또한 어떤 상황에 대해 11명 전체가 같은 생각을 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지금 타이밍에 전진 패스를 전개 할지 또는 횡 패스를 전개 할지 정도에 대한 생각은 함께 해야만 밸런스가 유지된다.
개인이 공을 오래 갖고 있는 것은 무의미 하다. 효과적인 공 점유율은 11명이 간결하게 쉬운 패스를 동료에게 주고 받기 위해 다시 움직일 때 유지된다. 그래서 경기가 안 풀릴 때, 경기 리듬을 다시 만들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는 ‘쉬운 패스’다.
동료에게 받은 패스를① 편안한 퍼스트 터치를 통해 잘 잡은 후, ② 고개를 들어 패스할 동료를 확인 한 후, ③ 정성을 들여 패스를 보낸 뒤, ④ 다시 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움직인다.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경기가 잘 안풀리는 날엔 이것마저 잘 되지 않는다. 좋은 패스 보다는 쉬운 패스가 우선 고려 대상이여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마치 오늘 우리 올림픽 대표팀처럼 말이다.
# 역습의 조건
수비하는 시간이 많은 경기였다. 멕시코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우수하다보니 한국의 수비라인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고 한국 선수들은 공 없이 좌우로 뛰는 시간이 많았다. 또한 수비 상황 시 이동거리가 많아 공을 빼앗아 공격으로 전환 할 때 발휘 할수있는 폭발력도 한계가 있었다. 공격 전환 이후 2~3 차례 패스 만에 다시 상대에게 공을 내주다 보니 리듬을 만들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2선과 3선에 위치한 선수들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수비 상황에서 2선은 올라가고 3선은 내려서는 장면이 몇 차례 있었는데 여기서 발생한 공간에서 멕시코 미드필더들은 공을 만졌고 한국 미드필더들은 열심히 뛰어만 다녔다.
역습을 잘하는 팀들은 확실한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 공격 전환 상황에서 후방에서 전방으로 연결되는 좋은 질의 킥(패스)
두 번째, 전방에 위치한 공격수의 반박자 빠른 스타팅 포인트
세 번째, 공격 진행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볼 터치와 드리블
오늘 한국은 수비를 많이 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역습의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멕시코는 한국 진영에서 활발하게 공을 순환시켰다. 공격하는 팀이 공을 좌우로 순환시키며 종종 전진패스를 시도하면 수비하는 팀의 수비 블록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역습을 잘하는 팀은 수비 할 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중앙 지역으로 상대의 전진 패스를 쉽게 허용하지 않기에 좋은 수비 형태를 유지한다. 그렇게 유지된 좋은 수비 형태는 공을 빼앗는 순간 곧바로 좋은 공격 형태로 이어진다. 형태를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포지션은 바로 중앙 미드필더다. 위에서 전방 압박을 하던, 밑으로 내려서 기다리던 수비 상황에서 선 간의 간격은 최대한 압축되어야 견고해진다. 이것을 위해 중앙 미드필더가 말도 많이 해야 하고 상대가 공을 이동 시킬 때마다 다른 동료보다 한 발 더 부지런하게 반응해야 한다. 오늘 경기에서 이 역할을 수행한 선수는 이창민과 박용우, 그리고 교체 투입된 이찬동 이였는데 이들 모두 수비 상황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나머지 공격으로 전환 되었을 땐, 힘이 부족했다.
# 공격 장면의 아쉬움
공격 장면이 많지 않았지만 앞선 경기부터 반복된 상황이 오늘도 두 가지 있었다.
1. 크로스 상황에서 중앙에 위치한 선수들의 확실한 움직임
몇 차례 측면 공략은 꽤 날카로웠다. 측면에서 간결한 조합플레이로 돌파가 이루어지면 페널티 에어리어 지역 근처에 있는 선수들은 최대한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각도로 침투하는게 우선이지만 각도가 나오지 않더라도 타이밍만 맞는다면 침투하는 것이 좋다. 공격수 한 명만 침투해도 그 상황에 관여된 모든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일시적으로 빼앗을수 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선 침투 없이 양 질의 패스를 받기 어렵다.
2. 드리블 돌파
황희찬, 류승우, 손흥민은 드리블 돌파에 능하다. 앞선 경기에서 이들의 드리블 돌파로 여러 차례 공격 포인트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이들의 장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좋은 드리블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동료로부터 연결된 공을 자신이 통제 할 수 있는 ‘내 범위’안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잡아놔야 상대 수비가 바로 덤비지 못한다. 속도를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고려대상은 언제나 공을 잡 잘아놓는 것이다. 그 다음 조건은 앞에 있는 상대 수비수와 상황을 계산하는 것이다.
1. 상대 수비수와의 거리
2. 상대 수비수와의 각도
3. 상대 수비수의 태클 타이밍
위 세가지 요소 중 두가지 정도만 앞서도 드리블 돌파가 가능한 상황이 많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경기에서는 앞선 피지, 독일 전과 같이 공격수들의 시원시원한 돌파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http://tvpot.daum.net/v/s61e0sREQsEpmQvIsmgpeIB
http://tvpot.daum.net/v/s677b33dkhrDwZarh4F7Dm7
# 승리에 대한 의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멕시코에게 밀렸다. 하지만 후반 16분 시네로스의 완벽한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간 것처럼 한국 선수들의 의지가 행운을 불러왔다. 경기를 뛰거나 보다보면 계속해서 밀리지만 결코 질 것 같지 않은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러했다. 우수한 기술력으로 공격을 전개한 멕시코와 달리 한국의 공격은 투박하고 또 투박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투박함이 승리의 원동력이였다. 수비수들은 마지막 순간에 몸을 던지며 슈팅을 막아냈고 미드필더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권창훈의 결승골 장면에서 황희찬이 재치를 발휘 한것처럼 한국은 오늘 투박했지만 결국 승리했다. 오늘 경기를 해설한 이영표 해설 위원이 멘트가 오늘 경기를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용과 결과가 모두 훌륭하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토너먼트 대회에서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결과입니다.” - 이영표 KBS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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