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봉훈의 유럽생활과 올림픽팀 이야기
여봉훈은 지난 2년 간 스페인, 포르투갈 무대를 경험하며 한 단계 성장했다.
포르투갈 프로축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여봉훈(22, 질 비센테)은 축구팬들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지난해 11월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에 잠깐 이름을 올렸지만 이후 올림픽 최종예선과 본선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일생 일대의 목표였던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지만 여봉훈은 주저앉지 않았다.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 달간 휴식을 취한 여봉훈은 지난 6월말 포르투갈로 건너가 프리시즌 일정에 돌입했다.
안동초-안동중-안동고를 졸업한 여봉훈은 2014년 스페인 프로축구 알코르콘(2부)에 입단하며 외국생활을 시작했다. 시즌 도중 3부리그 마리노 데 루안코로 임대된 여봉훈은 지난해 8월 포르투갈 2부리그 질 비센테로 이적하며 새롭게 출발했다. 지난 시즌 질 비센테에서 총 24경기를 뛰며 적응을 마친 여봉훈은 올 시즌을 자신의 이름을 알릴 적기로 보고 있다. 그의 주 포지션은 윙포워드와 섀도 스트라이커다.
포르투갈 출국 당일인 6월28일 여봉훈을 만났다. 웃는 모습이 ‘하회탈’을 닮은 여봉훈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딱 보기엔 이렇게 순한 사람도 없겠다 싶은데 “그라운드에서는 들소로 돌변한다”는 선수 매니저의 설명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여봉훈에 대해 좀더 알 필요가 있었다.
- 새 시즌을 앞둔 기분은.
“막상 한국에 있다가 다시 유럽으로 가려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도 팀이 1부로 승격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있어 좋은 기회가 왔다. 프리시즌에서 좋은 모습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빨리 가서 훈련하고 싶다.”
(질 비센테는 2005-2006 시즌에 부적격 선수를 출전시켰다는 이유로 1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강등됐다. 그러나 최근 포르투갈 법원이 질 비센테에게 내려진 처분이 불합리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포르투갈 축구협회는 질 비센테를 다시 1부리그로 승격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만약 이같은 결정이 최종 승인된다면 질 비센테는 지난 시즌 2부리그 11위에 머물렀음에도 1부리그에 참가할 기회를 얻게 된다)
- 한국에서 머물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5월 26일에 들어왔으니 근 한 달 정도 됐다. 그동안 못 봤던 지인들을 만나고, 틈틈이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몸을 만들며 지냈다. 경북 문경에 있는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거제도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음식을 워낙 잘 챙겨주시는 바람에 살이 좀 쪄 걱정이다.”
- 소속팀 합류 후 일정은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바로 훈련이다. 연습경기도 많이 있다. 작년에는 2부리그라 포르투갈 팀과만 연습경기를 했는데 올해는 1부리그로 올라갈 수도 있으니 어떨지 모르겠다. 작년에 1부리그 다른 팀들을 보면 셀타비고(스페인), 리버풀(잉글랜드) 2군과도 하더라.”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0년 고등리그에서 매탄고 권창훈과 맞대결하는 안동고 여봉훈.
“2002 한일월드컵 보고 축구에 미쳤죠.”
1994년에 태어난 여봉훈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축구의 매력을 알게 됐다.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여봉훈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당히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을 걸어갔다. 결국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해외무대로 진출해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
- 축구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내 나이 또래라면 다 2002 월드컵 때문에 축구를 시작했을 것이다. 저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축구에 미쳤다. 3학년 때 제대로 해보고 싶어 동네 축구교실에 가입했다. 월 3만원을 내고 주말마다 하는 건데 부모님이 싫어하셨다. 그래도 내가 졸라서 억지로 다녔다. 4학년 때 우리 축구교실이 안동초등학교와 교류전을 했는데 그때 안동초 감독님이 좋게 보셔서 저를 데려갔다. 부모님을 엄청 졸라 끝내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4학년 겨울에 문경에서 안동으로 유학을 갔다. 집에서 떨어져 혼자 지내니까 유학이다(웃음).
안동초등학교가 그때는 못했다. 축구교실에 있을 때 교류전을 하면 정식 축구부라 정말 잘 해보였는데 막상 가니까 매번 깨지더라. 그런데 당시 감독님께서 성적보다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기본기를 잘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안동초를 졸업하고 안동중, 안동고로 진학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지냈다.
당시 숙소가 없어 친구집에서 살았다. 그래도 그때는 친구들이 있어서 덜 힘들었는데 외국에서는 혼자 지내니까 정말 힘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라 정말 힘들었다.
- 부모님은 축구선수가 되는 걸 반대하지 않았나.
“특히 엄마가 반대했다. 운동하는 것 자체를 크게 싫어하신 건 아닌데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야 하니까 걱정하셨다. 아버지는 어릴 때 태권도, 배구를 취미로 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도 운동선수가 하고 싶다고 졸랐는데 할아버지가 워낙 엄하셔서 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그게 한으로 남아서 제가 하고 싶은 건 꼭 시켜주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축구선수가 되는 걸 허락을 해주셨다.”
-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대회나 사건은.
“딱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풍기초등학교가 잘했는데 거기에 김우홍(21, 데포르티보 라코루냐 B) 김영규(21, 레알 아빌레스)가 있었다. 그 친구들과 같이 안동 대표(안동MBC)로 한중일 교류전을 일본에서 했는데 우승한 적이 있다. 안동초는 명문이 아니라 딱히 좋은 기억은 없다. 그때 잘 하는 친구들과 하니 축구가 재밌다고 느꼈다.
김우홍과 김영규와는 안동MBC 팀 유니폼을 같이 입고 뛰니 기억에 남고 친했다. 영규는 작년에 제가 스페인 루안코에 있을 때 근처 동네에 있는 레알 아빌레스(3부) 팀으로 임대 왔다. 그때 매일 보며 친해졌다. 우홍이는 라코루냐에 있었는데 차로 2시간 거리다. 알코르콘에서는 지언학과 잠깐 같이 있었다.“
- 최건욱 안동고 감독이 지금의 여봉훈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최 감독 말로는 밤 11시까지 훈련했다고 하더라.
“독하게 했다. 축구가 재미 있어서 열심히 했다. 밤에도 훈련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도 했다. 벽에다 대고 공을 차고, 후배를 불러 슈팅훈련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다. 몸 생각하지 않고 미친 듯이 했다. 훈련 강도가 셌지만 재밌고 좋아서 했다.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승부를 봐야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렇다. 저는 지능적이라기보다 신체적인 걸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다(웃음). 하지만 성장하면서 지능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한다. 프로니까 몸으로 하는 것보다 축구를 보며 생각을 많이 해야한다고 느꼈다.“
- 최 감독에게 어떤 걸 배웠나.
“항상 인성을 강조하셨다. 좋은 선수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정신무장도 강조하셨다. 고등학교 때 운동을 비롯해 모든 게 힘들었는데 감독님 말씀대로 강하게 마음을 먹고 그 시기를 잘 이겨내니까 이후로는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이겨낼 수 있게 됐다.”
- 스피드와 피지컬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떤 노력을 했나.
“그냥 안동고를 가면 그렇게 된다(웃음).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하니 좋아졌다. 경기도 많이 치렀다. 기본적으로 주말리그를 포함해 매주 두 경기를 했다. 자체경기나 대학과의 연습경기도 했다. 많으면 일주일에 3경기도 했다. 경기를 많이 하는 것처럼 좋은 훈련이 없다. 피지컬이 좋아지고 경기 운영능력도 좋아진다. 감독님은 훈련이 끝난 후 선수들의 호흡을 터트리기 위해 뜀박질도 많이 시키셨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저녁마다 꾸준히 한 것 같다. 선배들이 하니까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보며 따라오게 됐다.”
여드름이 난 피부와 웃는 모습이 박지성과 참 많이 닮았다.
“동료들이 저 보고 박지성 닮았다네요.”
2014년 스페인으로 건너간 여봉훈은 이듬해 8월 포르투갈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처음 겪어본 유럽축구는 생소했고, 몸과 마음이 점차 지쳐갔다. 포르투갈로 간 건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였다. 적절한 선택이었다. 출전기회를 얻으며 몸 상태를 올린 여봉훈은 마침내 신태용호의 부름을 받기에 이른다.
- 2년 동안 스페인(2,3부)과 포르투갈(2부) 하부리그를 경험했다. 직접 부딪혀본 유럽축구는 어땠나.
“해볼만하다고 생각은 드는데 어려운 느낌? 참 묘하다. 외국인선수라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특출한 점이 있어야 하지 않나. 2년 동안 쉽지 않았다.”
-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루앙코로 임대 갔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언어도 못하고, 주변에 친구도 없어 항상 혼자였다. 정말 힘들었다.”
- 한국축구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스페인은 3부 팀도 패싱 게임을 했다. 때려 넣기보다 볼을 밑으로 깔아서 나오더라. 다가가면 볼을 쉽게 내주고 빠져나간다. 피지컬이 좋은 것은 못 느꼈는데 선수들이 호리호리해도 유연하고 기술이 좋다. 나는 많이 뛰고 부딪히는 스타일인데 패싱 게임을 하니 적응하기 힘들었다. 템포도 빠르니까 아무리 피지컬에 자신이 있어도 따라가기 버거웠다. 많은 걸 배웠다.”
- 운동도 힘들었겠지만 외로움은 어떻게 견뎠나.
지금은 합숙 생활을 해 동료와 같이 사니까 괜찮다. 오전훈련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 1시쯤 되면 한숨 잔다. 그리고 친구와 산책하고, 마트도 다닌다. 온두라스 출신으로 두 살 어린 조나단과 친한데 그 친구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덕분에 언어도 늘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계속 혼자 살았다. 오전훈련을 하고 나면 오후에는 계속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 동양인을 차별하지는 않았나.
“인종차별은 전혀 없었다. 그냥 저를 ‘중국인’이라고 부르며 장난은 친다. 그런데 저도 장난인 걸 아니까 같이 웃고 논다.”
- 언뜻 보면 박지성을 닮았다.
“안 그래도 지금 팀에서 별명이 박지성이다. 동료들이 나를 ‘지성 팍’이라고 부른다. 내가 어릴 적 롤모델로 삼았던 선수가 박지성이다. (이제 실력만 박지성처럼 되면 되겠다) 그러게 말이다.”
- 작년 8월에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오면서 전기가 마련됐다.
“포르투갈 1부리그는 스페인처럼 패싱 게임을 한다면 2부는 많이 뛰고 부딪히는 스타일이다. 피지컬을 강조해 나에겐 괜찮았다.
- 현재 뛰고 있는 질 비센테는 어떤 팀인가.
“원래 1부리그에 있던 팀이었는데 한 번씩 2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곤 하는 팀이다. 선수는 포르투갈 국적의 선수보다 다른 나라 선수가 더 많다. 가나, 리비아, 카보베르데,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온두라스, 한국 등 다양하다.”
- FC 포르투에서 뛰는 석현준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포르투갈 사람들은 석현준을 다 안다. 한국 사람만 보면 석현준 이름을 댄다. 멀리 포르투갈에서 유명세를 타는 걸 보면 동기부여가 된다.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정말 잘 하고 있다.”
- 지난 2월 FA컵 4강전에서 질 비센테와 FC포르투가 만났지만 석현준과의 맞대결은 아쉽게 무산됐다. 대신 석현준이 한국음식을 대접했다고 하던데.
“현준이 형의 부모님이 포르투갈에서 같이 살아 한국음식을 해주셨다. 전, 김치, 된장찌개, 불고기 등 음식이 맛있어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정말 감사했다. 현준이 형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니 저도 빅클럽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다. 올해 내가 열심히 해서 1부리그 맞대결을 했으면 좋겠다.”
- 석현준이 올림픽 와일드카드로 가게 됐다. 본인이 정말 꿈꿨던 무대를 형님이 갔다.
“정말 축하해줄 일이다. 가서 잘 하고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올림픽팀 합류는 그에게 아픔이자 자극제가 됐다.
아쉬움만 남은 올림픽팀 합류
여봉훈은 지난해 11월 열린 중국 4개국 친선대회를 앞두고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에 뽑혔다. 당시 현지시간으로 새벽 1~2시에 명단 발표 소식을 접한 여봉훈은 그날 아침까지 잠을 못 잘 정도로 흥분되고 설렜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전한 중국 4개국 친선대회는 그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되고 말았다. 유쾌하게 웃으며 인터뷰를 하던 여봉훈의 표정도 조금 어두워졌다.
- 최종명단이 어제(6월27일) 발표됐다. 혹시 기대했나.
“전혀 아니다. 제가 잘 했으면 조금이라도 기대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 신태용 감독이 작년 10월 호주와의 친선전을 마친 후 “아직 못 본 선수가 한 명 있다”고 말했는데 그게 여봉훈이었다.
“신 감독님이 그 말씀을 하실 때는 이미 저를 뽑겠다는 언질을 줘 알고는 있었다. 감독님께서 제가 뛰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
- 작년 4개국대회 소집 당시를 돌아보면 어떤가.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 태극마크를 다니까 그렇게 되더라. 나는 연령별 대표팀도 해본 적이 없었다. 태극마크를 단 게 처음이라 더 긴장한 것 같다.”
- 뭐가 부족했나.
“스타성이 부족했다. 즐길 줄 알아야 했는데 딱딱하게 얼어있어 보여줄 걸 못 보여줘 아쉽다. 당시 페이스도 살짝 떨어졌다. 잘 하다가 대표팀 소집 직전에 경기를 못 뛰었다. 그래서 경기감각이 떨어졌던 게 컸다.”
- 모로코, 콜롬비아와의 두 경기에 출전했다. 본인의 활약을 평가한다면.
“모로코전은 30점? 보여준 게 없다. 70분 뛰고 나왔다. 콜롬비아전은 후반에 들어가 30분 뛰었다.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골 찬스 두 개를 놓쳤다. 황희찬이 넣어준 패스는 정말 좋았는데 그때 넣었더라면...... 콜롬비아와 경기에서는 수비수가 걷어낸 게 저 맞고 상대편 선수에게 가서 골을 허용했다.”
- 그래도 테스트를 받았다는 자체가 긍정적이다.
“긴장되는 상황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몸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다. 경기장에 나가기 전에 100% 몸 상태를 가꿔나야 실력발휘를 잘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 마지막으로 새 시즌을 앞둔 각오와 목표를 밝혀달라.
“최소 20경기 이상 뛸 것이다. 지난 시즌에는 컵대회까지 24경기 나왔다. 1부리그에서 뛴다면 경쟁이 치열하지만 살아남겠다. 선발로도 7~8경기 정도 나가고 싶다. 좋은 모습을 보여 인지도를 높이고, 좋은 팀으로 이적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저를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글 = 오명철
사진 = FAphotos
여봉훈은 포르투갈로 날아가 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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