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돌아간 박경훈,교수의 책임감을 말하다
교수로 돌아온지 1년 반, 박경훈은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백발, 센스 있는 패션 감각 모두 여전했다. 그런데 표정은 한결 더 편안해졌다. 부담감을 벗어버린 결과였을까?
전주대 박경훈 교수를 만났다. 제주유나이티드의 사령탑으로 5년 동안 활약했던 그는 2014년 말 건강상의 이유로 계약 기간을 1년 남긴 채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2015년부터 전주대 문화융합대학 경기지도학과(축구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실 전주대는 박 교수에게 낯선 곳이 아니다. 2009년 10월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약 1년 7개월 간 전주대 교수로 일했다. 쉽게 말하면 복직인 셈이다.
다시 학생들 속으로 들어간 박경훈 교수가 궁금했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가 전주까지 내려간 이유다. 마침 여름방학 중이었는데도 박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경기분석 및 연구를 위해 학교에 남아있었다. 수많은 책 그리고 열정적인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 그는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여름방학에 접어들었지만 평일에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경기분석을 합니다. 주말에만 집이 있는 서울에 올라가고 있죠. 학생들이랑 함께하는 경기분석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 형태로 모 포털사이트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꾸준히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전까지는 프로축구를 분석했고, 최근까지 코파아메리카를 했어요. 이제 유로 2016 4강전을 준비 중입니다.
여전히 바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생각해보니 5년 만의 복직이네요. 2015년에 복직해서 처음 1년 동안은 학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학생들이 어떤지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처음 전주대에 왔을 때보다 학교가 더 좋아졌더라고요. 주변 환경도 많이 변했고, 이제는 번화가가 되었죠.(웃음) 학생들 수준도 더 높아졌어요. 축구전공에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보니 가르치는 일이 즐겁네요.
- 감독으로 현장에 있는 것보다 지금이 마음은 더 편안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마음은 확실히 더 편안해요. 감독은 승부의 세계에서 살잖아요. 한 경기 한 경기가 그야말로 수명을 단축시켜요.(웃음) 긴장을 풀고 다시 학교로 복직한 건 정말 잘한 일 같아요. 학생들이랑 함께 있으면서 제가 현장에서 터득했던 걸 어떻게 잘 전달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제게는 활력소가 되죠. 교수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함께 길을 모색하고 도움을 줘야 해요. 그러면서 저도 공부하죠. 자연스레 프로 감독으로 있었던 지난 5년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여름방학에 접어들었지만 박경훈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경기분석에 매진 중이다
- 돌이켜보니 제주에 있었던 5년은 어떻게 다가오던가요?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게 된 시간이라고 할까요? 제주에 있을 때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여유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고로 리더는 여유를 갖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통솔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1년을 남기고 그만두게 됐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부족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스스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습니다.
- 그래도 가끔은 그라운드가 그립지는 않으신가요?
사람의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거죠. 사실 그라운드는 항상 생각이 나요. 만약 내가 다시 감독을 하게 된다면, 이제는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에서의 5년은 정말로 저를 성숙시킨 것 같습니다.
- 학교 이야기를 해볼게요. 전주대 축구전공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축구선수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과죠. 사실 대한민국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해요.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거든요. 저는 축구선수들이 선수로 성공하지 못할 경우 대안을 제시해주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전공이 바로 그런 학과죠. 축구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살려서 다른 분야로 이끌어주는 겁니다. 축구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선수 말고도 많아요. 지도자, 심판, 분석가, 행정가, 에이전트, 방송인 등이 있죠. 그래서 재능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조세 무리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감독이 나오지 말란 법 없거든요.
저는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데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오는 8월 1일부터 학교에서 지도자 C급 라이센스 강습회를 실시합니다. 제가 주강사로 나서는데요. 우리 과 1~2학년 학생들도 이 수업을 듣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만약 1학년 말이나 2학년 1학기 때 C급 라이센스를 따는데 성공한다면, 일반 축구선수들보다 최대 15년은 빨리 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길을 빨리 찾고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이지요. 진로를 찾을 시기를 놓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거든요. 우리나라 프로팀 감독의 현황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유명 선수 출신이잖아요. 이제는 실력 있는 지도자들이 감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대학 때부터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확립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 축구 쪽 진로를 원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대학 중 축구전공을 설치한 곳이 그리 많지 않아요. 호남대 축구학과랑 저희가 대표적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지방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나 부모님들이 오길 꺼려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수도권, 특히 서울 쪽에도 축구전공을 가진 학교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축구산업은 함께 키워야 합니다. 진로교육을 위한 장도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죠. 특정한 단체, 특정한 개인이 나선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박경훈 교수의 집무실. 머리 위로 걸린 선수 시절 사진이 인상적이다
- 전주대 축구전공의 학생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현재는 선수 출신이 70, 일반 학생들이 30 정도로 비율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앞으로 선수 출신과 일반 학생들의 비율이 50대 50정도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 출신과 일반 학생들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거든요. 축구선수 출신들은 실전에서 경험했던 전술적인 면들을 풀 수 있어요. 일반 학생들은 알지 못하는 부분이죠. 반면 일반 학생들은 글을 쓰는 능력이나 상식 등 학업적인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교수님의 지도 스타일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학생들에게 ‘정답이 이렇다’라고 말해주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죠. 저는 대학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가장 경험을 많이 쌓고 또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때거든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정말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와서는 일종의 보상심리로 1, 2학년을 소홀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대학 졸업하면 사회인이고, 대학원을 가지 않는 이상 더 이상 공부할 기회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시간을 아까워하라고 조언합니다. 스스로가 찾아서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려운 게 있으면 나와 함께 고민해보자고 이야기하죠.
-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나요?
나이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1962년생이셨던 것 같아요. 회계사를 하는 분이 계신데, 원래는 다른 학과에 재학 중이셨거든요. 그런데 축구전공 강의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 요청이 왔어요. 그렇게 하시라고 했죠. 청강하고 난 뒤 만족하셨나 봐요. 바로 편입을 하셨죠. 젊은 학생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좋은 예죠. 이런 걸 보면 축구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껴요. 축구산업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요.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축구학이란 무엇인가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축구는 천 년이 넘었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새로운 전술이 나오고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죠.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우리나라는 흐름이 많이 뒤떨어졌죠. 유럽에서 몇 십 년 전에 사용했던 압박축구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대세가 됐잖아요.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는 것 같아요. 답을 찾기 참 힘든 학문입니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연구가 필요해요. 우리 학생들이랑 FC바르셀로나의 공격과 수비 전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저도 새로운 걸 깨닫게 됩니다. 교수지만 저도 배우고 있어요. 서로의 의견이 잘 접목돼 하나의 철학이 만들어지고, 이 철학은 토론을 통해 또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죠.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토론하고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봐야 하는 게 바로 축구학입니다.
축구와 관련 있는 모두가 깨어있어야 해요. 얼마 전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중학교 팀 경기를 본적이 있는데, 아직도 옛날에 구사하던 롱킥 위주의 전술을 구사하더라고요. 걱정됐어요. 그런데 마냥 지도자 탓만 할 수도 없어요. 가장 의식이 깨어있어야 할 사람들은 학교 교장선생님들이거든요. 당장의 좋은 성적을 요구하면 감독으로서는 이기기 위한 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없어요. 구식 전술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죠.
박경훈 교수는 학생들이 당장의 이익보다 가능성을 보고 움직이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학인만큼 아무래도 취업률을 신경 쓰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제 고민 중 하나도 바로 취업이죠. 앞으로 1~2년 뒤에는 학생수가 줄어듭니다. 각 대학마다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든요. 특히 지방대학이 더 심해요. 인기 없는 과는 없어진다고 봐야 하는데, 평가 지표 첫 번째가 학생 충원율이고 그 다음이 취업률이에요. 그런데 교육부 기준으로는 4대 보험에 가입된 사업장에 취업하는 것만이 취업률에 반영이 되거든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프로 축구선수를 포함한 축구산업에서는 이 기준을 만족하는 곳이 사실 많지 않죠. 이런 애로사항이 있어요.
저는 학생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요. 밑에서부터 인정을 받고 서서히 올라가야 하죠.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알아주는 기관 및 기업 들은 들어가기 쉽지 않아요. 초등학교 지도자에서 시작해 스펙을 성실히 쌓아서 인정받으면 다른 곳에서도 당연히 알게 되거든요. 뿌리가 튼튼해야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의식을 바꾸는 것은 저를 포함한 교수들의 책임이라고 봐요.
-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주에서 함께 있었던 이도영 수석코치가 요즘 K3리그에서 잘 나가고 있습니다. 자주 연락하시나요? (이도영 수석코치는 현재 화성FC의 사령탑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이도영 감독은 자주 만납니다. 또 다른 제주 코치였던 부산아이파크의 최영준 감독과도 자주 연락하죠. 6월 말에 열린 수원삼성과 부산아이파크의 FA컵 16강전을 이도영 감독이랑 같이 보러 갔었어요. 요즘 부산이 성적이 안 좋아서 응원하는 차원에서 함께 간 거였는데요. 그런데 졌죠. 그 날 부산이 머무는 호텔에 가서 셋이 같이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조언했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요. 성적이 안 좋을 때는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경기에서 이겼을 때는 그 때 싫은 소리를 하라고요. 또 감독은 표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여유가 없어지면 표정, 언어, 행동 모두가 다 뒤틀리거든요.
- 교수님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축구전공에 와서 많은 지식을 배우고 사회에 나가서 활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뿌듯할 겁니다. ‘아! 내가 전주대에 잘 왔다’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죠.
제가 제 손으로 축구전공에서 많은 학생들을 키워내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20%의 학생들을 키워야겠다고 느끼죠. 제가 키워낸 20%의 학생들이 잘 되면, 다른 학생들에게도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사실 쉽지는 않아요. 재능을 먼저 파악해야 하고 게다가 성실한 학생들을 찾아야 하죠.
- 축구학 교수로서 꼭 이루고 싶은 점이 있나요?
당연히 학생들이 훌륭하게 잘 성장하는 거죠. 아까도 말했지만, 대학교 때는 공부해야 할 시기입니다. 항상 얘기해요. 이 시기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간혹 취업전선에 나가있는 3~4학년 학생들이 가능성보다는 돈을 보고 움직이는 경우를 접하게 되요. 저는 사실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조금 더 멀리보고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힘든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죠. 유럽에 나가서 영어공부를 하고, 잉글랜드 4부나 5부리그 구단에서 경기분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을 쌓고, 잘해서 더 좋은 곳으로 옮기면 얼마나 멋질까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경기분석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나 조세 무리뉴 감독도 경기분석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요. 분석을 잘하면 감독을 해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압신 고트비 감독을 보세요. 2002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분석관 일을 했지만 잘하니까 이란에서 대표팀 감독을 하고 중동에서 프로팀 감독도 하잖아요. 몇 백만 원의 돈이 전부는 아니에요.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멀리 보는 게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 이 점을 꼭 알려주고 싶어요.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 학생들이잖아요. 두려울 게 없어요.
- 끝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고통을 즐길 줄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고통이라는 게 특별한 건 아니에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죠. 확신을 가지고 노력해야 성공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 축구전공 학생들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옛날에 그랬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나이든 사람들의 조언도 젊은 친구들이 잘 들어줬으면 좋겠네요.(웃음)
글=안기희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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