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정정용 전임지도자가 말하는 나의 축구, 그리고 U-18 팀

용의꿈 2016. 6. 16. 09:12


정정용 전임지도자가 말하는의 축구,그리고 U-18 팀


정정용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는 최근 U-18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을 훌륭히 치르며 실력을 입증했다


“어찌나 신경을 썼는지 두 경기 치르고 나서 병 났다 아입니꺼.”

6월 초 잉글랜드와의 두 차례 평가전을 치른 U-18 대표팀의 정정용(47) 감독은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인 정정용 감독은 이번에 U-18 대표팀 사령탑까지 맡아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끈 U-18 대표팀은 6월3일과 5일 열린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각각 2-0, 3-0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U-17 월드컵 출전 당시 조별리그에서 0-0으로 비겼던 잉글랜드를 이번에는 완벽히 제압했다. 코칭스태프도, 선수단도 이 정도로 완승을 거둘 줄은 예상조차 못할 정도로 내용과 결과 모두 완벽에 가까웠다.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 연령대 선수들을 맡았던 정 감독은 3년 만에 아이들과 재회해 유쾌한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다. U-18 대표팀의 인상적인 활약 덕분에 정정용 감독도 덩달아 관심을 받게 됐다.

사실 정 감독은 선수나 지도자로서 아직까지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신암초-청구중-청구고-경일대를 졸업한 ‘대구 토박이’ 정정용은 1992년 말 창단한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 축구단에서 97년까지 6년 동안 중앙 수비수로 뛰었다. 97년에 큰 부상을 당하며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 살에 운동을 그만 둬야 했다. 변변한 대표팀 경력도 없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2006~2013년, 2015년~현재)와 대구FC 수석코치(2014년)를 한 것이 지도자로서 내세울 이력의 전부다.

하지만 정 감독은 이력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축구 철학과 경험을 켜켜이 쌓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유소년 선수들을 잘 알고, 잘 키워낼 줄 안다. 정 감독의 축구 철학과 유소년 지도 노하우를 들어보면 그의 생각과 경험이 넓고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대표팀 훈련을 지휘하고 있는 정정용 감독의 모습


- 잉글랜드와 두 차례 평가전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두 이겼다. 예상은 했나.
전혀 예상 못했다. 잉글랜드와 평가전을 한다는 이야기는 올해 초부터 나왔다. 그런데 단발성 경기를 위해 감독을 내정할 수는 없고, 내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 연령대를 맡았으니 나에게 감독을 맡길 수도 있다는 언질은 받았다. 결국 한 달 전 쯤 내가 감독을 맡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래서 영국 U-18 대표팀 명단을 입수해보니 EPL에서 뛴 선수들이 많더라. ‘이거 큰 일 났다’ 싶었다. 1승1패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차 적응 문제도 있으니 이기려면 1차전에서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국 대표팀이 경기 5일 전에 들어와 시차 문제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영국 선수들을 분석했다. 18명 선수들의 경기영상을 3분짜리로 다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팀을 구성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주말리그를 보러 다녔다. 우선순위는 작년 U-17 월드컵을 뛰었던 선수들이었다. 거기에 내 스타일과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골라 22명을 선발했다.

- 두 차례 평가전에서 나온 장단점을 평가한다면
선수들이 의외로 잘해줬다. 작년 U-17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비긴 잉글랜드를 이번에는 이겨야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훈련할 때도 좋았다. 상대팀 분석 영상을 영상공유 사이트에 올려놓고 꼭 보라고 했다. 휴대폰을 빼앗으면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니 빼앗는 대신 상대팀 분석 영상과 우리팀 훈련 영상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상대 선수들의 장단점을 리포트로 써내라고 했는데 잘 따라줬고 효과를 봤다.
크게 세 가지를 강조했는데 전방압박, 빌드업, 카운터어택이다. 전방 압박은 그런 대로 괜찮았는데 빌드업이 안됐다. 특히 상대방의 압박이 들어올 때 몸의 방향, 볼터치 등 기술적인 면이 부족했다. 그것은 평소에 학교에서 해야하는 것이다. 12월에 해외 전지훈련이 계획돼 있는데 그전까지 소속팀에서 연습해보라고 시켰다. 역습은 훈련 때 보니 한 명만 치고 나가고 나머지는 구경하더라. 그래서 기본적으로 역습 상황에서 3~4명은 공격에 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번 이야기하니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더라.

- 이제 당분간 18세 대표팀의 경기는 없다.
참 아쉽다. 이 선수들이 U-17 월드컵 이후 마땅히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다. 연령별 소집훈련을 하며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내가 13세부터 이 아이들을 맡으면서 중국, 일본 말고 유럽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자고 했다. 그래서 2012년에는 한독 교류전을 독일에서 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 우리 선수들의 실력에 깜짝 놀라 다음에 다시 교류전을 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내가 없었지만 프랑스, 멕시코 대회에 출전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정정용 감독은 축구선수로 활동할 때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 선수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 축구단에서 6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당시 이랜드가 1992년 말 창단해 초반 3년 동안 계속 우승했다. 저는 센터백이자 주장을 맡았다. 그러다 97년에 이랜드가 프로로 전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창단멤버로 뛰었으니 프로로 전향해도 여기서 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97년에 무릎과 어깨를 다친 데 이어 눈 주위 부상을 당했다. 마지막 부상이 컸다. 연습경기 도중에 눈 주위 뼈가 부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수술은 안 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헤딩을 또 하면 바이러스가 뇌로 침투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며 축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수비수인데 헤딩을 안 할 수가 없지 않나.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렇게 선수생활이 끝나고 말았다. 나는 눈에 확 띄지는 않아도 팀에 필요한 선수였던 것 같다.

- 지도자로 처음 입문하게 된 계기는.
은사님이신 이영무 감독님이 불러 용인 태성중학교 감독을 맡게 됐다. 사실 지도자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영무 감독님을 뵙고 이야기를 해보니 지도자를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후 여러 팀을 옮겨 다녔고, 해외에도 다녀왔다. 2002 월드컵 당시에는 브라질로 지도자 연수를 다녀왔다. 2005년에는 할렐루야 축구단 코치도 했다.

-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가 된 이유는
나는 선수 시절에도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뭔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게 내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랜드에 있을 때도 명지대학교 대학원에 다녔다. 감독님이 흔쾌히 보내주셨다. 한양대 대학원 박사과정은 나중에 지도자를 하며 이수했다. 스포츠생리학 전공이다. 항상 배움에 목 말랐다. 그래서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를 하며 더 나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 유소년 지도의 노하우가 있다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훈련할 때 100% 실력을 발휘하게끔 지도자가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라질 연수 기간에 지역 팀에서 선수로 뛰겠냐는 제의가 왔다. 우리로 말하면 K3리그 정도의 팀인데 감독이 해보라고 권했다.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지도 얼마 안 돼 부상 생각도 하지 않고 6개월 정도 같이 뛰기로 했다. 그런데 ‘아, 이거구나’ 싶더라. 우리는 훈련할 때 실수를 하면 괜찮다고 하는데 거기는 달랐다. 연습경기를 해도 서로 욕하고 난리가 난다. 내가 30대 초반이고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는데 내가 패스를 제대로 안 해주면 나도 욕 먹었다.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패스 하나를 할 때도 집중하게 되더라. 그런데 한국에는 아직도 이런 문화가 없다.

- 너무 어릴 때부터 경쟁에 치이면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초등학교 연령대까지는 흥미를 유발해주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부터는 훈련할 때 모든 걸 쏟아붓게 만들고 경쟁을 일상화시켜야 한다. 축구 선진국일수록 더 그렇다. 2006년에 포르투갈 브라가로 1년간 지도자 연수를 다녀왔다. 17세팀 코치를 했는데 훈련은 9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전쟁이다. 감독, 코치는 가만히 팔짱 끼고 있어도 자기들이 알아서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선수 하나가 소리 소문 없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예삿일이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 전임지도자로서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막중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다. 골든에이지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골든에이지는 3년차에 접어들며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 부분적인 제도 개선은 필요하지만 기본 취지는 계속 유지해가야 한다.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은 다양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동기부여가 되고 검증된 지도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선수의 데이터를 확보해 체계적인 선수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 바람은 프리(pre) 골든에이지와 포스트(post) 골든에이지 세대를 좀더 체계적으로 관리했으면 하는 것이다. 현재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은 12~15세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훈련을 시켜보면 이 나이대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크게 늘진 않는다. 개인기는 더 어린 나이에 배워야한다. 현재 협회에서 프리 골든에이지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력과 재원이 필요한 문제다. 그리고 16세 이상 선수들도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국제대회 경험을 쌓지 못하고 정체되면 기껏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으로 관리해놓은 것이 아무 쓸모 없게 된다. 이렇게 체계적인 연령별 관리가 이뤄지면 우리도 독일처럼 큰 효과를 볼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정정용 감독은 이승우를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지도자다.


- 이승우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첫 인상은 어땠나.
이승우를 2011년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해 중국에서 열리는 AFC 페스티벌 대회에 참석했다. 당시 북한과 맞붙었는데 북한 선수들은 우리보다 두세 살 위처럼 보였다. 북한과 경기를 하면 아이들이 다 쫄았다. 그런데 한 명만 안 그랬다. 그게 이승우다. 혼자 휘젓고 다녔다. 기질이 달랐다. AFC 페스티벌에 다녀온 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로 갔다. 이후 대회가 없어 보지 못하다 2013년에 AFC U-16 챔피언십 예선을 위해 다시 보게 됐다. 당시에도 이승우 발탁 여부를 놓고 고심했다. 튀는 행동을 하면 팀워크에도 문제가 생기니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승우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승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팀워크가 문제였는데 여러 분들의 조언을 들어본 끝에 이승우를 뽑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승우는 지시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하는 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 번은 이승우에게 등번호 20번을 줬더니 그게 불만이었던지 투덜거리더라. 그래서 승우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등번호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설명했다. ‘너가 9번을 받고 수비를 할 수 있겠냐. 아니면 5번을 받고 센터포워드를 할 수 있겠냐. 20번을 달면 어디에서든 뛸 수 있다. 나도 현역 시절에 20번 달고 뛰었다’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승우가 ‘아 그런 의미가 있었네요’라며 수긍을 하는 눈치였다. 연습경기를 뛴 후에 승우에게 20번 달고 뛰니 어떠냐고 묻자 ‘(숫자가 커서) 조금 무겁긴 해요’라며 웃더라. 정답은 그거였다.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승우만 감싸준다며 뭐라고 했지만 그건 내가 감수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 잉글랜드와 두 경기를 치르며 함께 한 이승우는 예전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나.
(한숨을 쉬더니) 승우를 어떻게 써야 하나 또다시 고민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주장을 시키자고 생각했다.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원래 주장이던 이상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번에는 승우를 시키자고 했다. 승우를 주장 시켜놔야 앞에서 격려하고 모범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뒤로 빠져서 불만을 표시하면 힘들어진다. 그래서 이번에 대표팀 소집하는 날, 이승우와 일대일 면담을 하며 ‘너에 대한 선입견이나 안 좋은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떨쳐내자. 그러니 네가 주장을 맡아야겠다’고 말했다. 승우가 자기는 한 번도 주장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길래 그냥 하면 된다고 했다. 이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가끔 불만을 털어놓으려고 해도 ‘네가 주장이다’라고 한 마디하면 ‘아, 네 그렇죠’라며 수그러들었다. 승우는 예전처럼 돌출행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이승우에게 따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런 것 없다. 승우만 내 자식이 아니고 모두가 자식이다. 예전에는 이승우만 감싼다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시선이 있었는데 이제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오히려 승우를 통해 다른 멤버들이 함께 조명되고 커나가는 것을 다들 인지하고 있다.

- 지도자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2009년에 U-14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우승을 한 뒤 처음으로 언론사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기사 제목이 ‘유소년은 내 운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딱 그 말대로 됐다(웃음). 솔직히 내 꿈은 U-17, U-20 월드컵 같은 메이저대회에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하는 것이다. 모든 게 완성된 선수는 흥미 없다. 아직 덜 완성된 유소년 선수들을 만들어내 메이저대회 성적을 내고 싶다. (그렇다면 이 나이대 선수들을 데리고 4년 후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어떤가) 그러면 좋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글 = 오명철
사진 = FA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