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권 칼럼 2] 우월성과 차별
스포츠와 경쟁
스포츠는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 활동이다. 스포츠에서 경쟁은 타인 혹은 다른 팀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학습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노력의 고단함을 알기에 스포츠에서 승리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성취와 감동을 선사한다. 스포츠 현장에서 경쟁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타인 혹은 다른 팀과의 경쟁이다. 이것은 스포츠의 본질이므로 모두가 당연시 하는 경쟁의 형태다. 둘째는 팀 내의 경쟁이다. 팀 내의 경쟁은 팀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거나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기 위한 지속적인 경쟁이기 때문에 ‘자신과의 싸움’이라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전자를 스포츠에서 필수불가결하다 여기지만 후자는 간혹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특히 팀 내의 경쟁에서 느껴지는 불공정함, 즉 차별을 경험하게 되면 논란은 더 커진다.
팀 내의 경쟁, 우월성의 증명인가, 차별의 산물인가?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용한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도자는 응당 최고의 기량과 컨디션을 갖추고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배제된 당사자들은 팀 내에서 이루어지는 선발경쟁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마련이다. 학부모들이 흔히 갖는“우리 아이나 내가 지도자에게 찍혀서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는 생각들이 그러하다. 심지어는 “내가 축구를 하려고 그만큼 돈을 들이고 있는데 경기에도 한번 못 내보내주나?”라는 본전 생각이 섞인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선수들의 불만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대신하여 경기에 나선 동료를 보면 나보다 크게 나은 것 같지도 않고, 지금 자신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은데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이럴 때 주변에서 누구누구는 지도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소문은 너무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아무리 봐도 그것이 이유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세상을 탓하게 된다.’
이런 감정은 주전경쟁에서 한번이라도 고배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흔히 느끼는 감정이다. 국가대표나 프로팀처럼 높은 수준에서의 주전경쟁 탈락은 선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가 되는데 반해, 학원스포츠에서의 주전경쟁 탈락은 왜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길까?
‘질 나쁜 ’ 지도자들의 과오
실제로 과거 일부 ‘질 나쁜’지도자들은 학부모 관리, 자신의 욕망 등을 위해 선수 차별, 선수 죽이기, 금품 및 향응 수수, 횡령 및 배임, 승부조작, 폭력, 욕설 등 수 많은 과오를 저질러 왔다.
‘소속된 학교나 팀에서는 먹고 살만큼의 임금을 지급해 주지도 않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계약을 해주다보니 지도자들은 생계를 위해 소위‘알아서’하게 되면서 학부모들로부터 인건비나 경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를 부담하는 학부모들은 생각보다 잘 따라와 줬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학원 축구의 구조가 그렇다 보니 생기는 부조리구나라고 여기게 되니 도덕적 판단도 무뎌진다. 심지어는 이런 구조에 순응하지 않고, 고고한 척하는 지도자들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어렵게 구한 자리니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최대한 긁어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런 과오들과 그릇된 생각들은 지도자 개인의 문제이기 보다는 우리나라 스포츠가 갖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지도자들의 그릇된 행동들이 선량한 지도자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돌아왔다는 점이다. 자나 깨나 축구만 생각하는 진정한 지도자들조차도 한데 묶어 ‘지도자=부패’라는 공식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이다. 경기에서 승리를 위해 주전선수를 선발하고, 승리라는 유일한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봉사한다는 지도자들이 뭔가 다른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선수 및 학부모들은 지도자들을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고,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상대적 박탈감에 의한‘차별감정’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선수 선발에서의 우월성 판단은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선수나 학부모들이 주전 경쟁에서 밀렸을 때 느끼는 이 ‘차별감정’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라 ‘차별’이라는 개념으로 이미 정립되어 있다. 차별은 사전적으로는 “특정 기준에 따라 우월을 따져 구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사회적 합의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및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 19가지의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우대하거나 배제 또는 불리하게 대우하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 기준에 맞추어 보면 안타깝게도 ‘실력 이외의 차별적 요소에 따른 선수 선발’이라 여겨지는 주전선수 탈락은 차별에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측면에서 크로스를 활용한 공격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키 작은 공격수 대신 키가 큰 공격수를 투입하는 것도 신체조건에 따른 차별이 아니다. 또한 남자대표팀에 내가 장애인이나 여자라서 선발되지 못했다는 것도 당연히 차별이 아니다. 직접적으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지 않아서 선발에서 배제되었다는 이유도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차별이라 보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스포츠에서 최선의 결과를 위해 특정 기준에 따라 우월함을 가려내는 것은 지도자 고유의 임무이지 차별이 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차별이 의미하는 “특정 기준에 따라 우월을 따져 구별하는 행위” 즉 선수들을 ‘차별’해서 팀을 꾸리는 임무를 가진 사람이 지도자다. 다만 이런 차별에는‘승리’라는 목적이 분명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다른 목적을 위한 우월함의 판단이나 악의적인 차별은 명백히 평등주의를 훼손하는 차별이 분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차별이 아니라 신뢰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문제는 차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악의적이라 하더라도 지도자들의 본질적인 임무가 ‘차별’에 있는 이상, 문제시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받는다고 여기는 불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필자는 이문제의 원인이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에 있다고 본다. 좋은 지도자든, 나쁜 지도자든, 지도자라면 누구나 그 동안의 차별에 관한 현장의 불만들은 스스로가 양산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제의 해결은 지도자들이 함께 자정을 통해 공정한 선발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을 확보하는 것뿐 다른 길은 없다. 학교 당국은 물론 선수나 학부모들도 ‘질 나쁜’지도자들을 결코 묵과해서는 안 되며, 지금부터라도 지도자들 스스로 자신이 가진 훌륭한 재능을 올바르게 써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의 지도자 자리에 대한 밥그릇 싸움은 이미 구시대적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이제 세계의 지도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지도자들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길만이 모두가 살 길이다. 한국 축구 지도자들이 신뢰를 회복하고 세계에 우뚝 설 것이라 굳게 믿는다.
* 이 칼럼은 월간 사커뱅크 2015년 12월호에 실렸던 것으로 월간 사커뱅크와 칼럼니스트의 허락 하에 게재되었습니다.
글 = 김현수
사진 = 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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