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선수 출신 축구행정가, 김동기 KFA 심판기술교육팀장

용의꿈 2016. 2. 18. 17:15

선수 출신 축구행정가,김동기 KFA 심판기술교육팀장



‘멀티 플레이어’가 대세인 세상이다.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준비를 잘해놓으면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게 현실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진로 때문에 고민 중인 축구선수라면, 혹은 진로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는 축구선수가 주변에 있다면 지금부터 선수 출신의 9년차 축구행정가인 대한축구협회 김동기 심판기술교육팀장(45세)의 이야기를 눈여겨보자.

김동기 심판기술교육팀장은 선수 출신의 베테랑 축구 행정가다. 2007년 FIFA U-17 월드컵 조직위원회를 시작으로 올해 9년째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하고 있다. 대표팀의 경기 분석, 기술 향상 등 주로 기술 파트에서 활약해왔고, 지난해부터는 심판 육성 및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처음부터 축구 행정가의 길을 생각한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김 팀장은 프로 축구선수 출신이다. 1994년 부산 대우로얄즈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해 이듬해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고, 그 곳에서 1998년까지 뛰었다.

당시 포항은 황선홍, 홍명보, 라데, 안익수 등 화려한 멤버들로 FA컵 우승(1996),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1997) 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김동기 팀장 역시 ‘큰 꿈’을 가지고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수술을 7회나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김 팀장은 비록 많은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지만 화려한 멤버들 사이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

축구선수 이후 진로, 지도자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1999년, 김 팀장은 호주로 넘어갔다. 호주 프로리그에서 5년 동안 선수 생활을 더 한 뒤 현역 은퇴를 했고, 이후 호주 축구학교의 코치로 입사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바로 기성용이 유학 생활을 했던 존 폴 칼리지 사커 스쿨(John Paul College Soccer School)이었다.

이때만 해도 김 팀장은 지도자의 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호주에서 기성용, 김주영 등 한국의 유명 선수들을 지도하며 얻은 경험이 자산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로를 지도자로 국한시키지는 않았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기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영어 공부는 물론이고 대학까지 다시 다니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몸은 피곤했지만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었기에 행복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운명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한국에서 열린 2007년 FIFA U-17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채용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운명처럼 지원서를 낸 그는 합격 통보를 받았고, 경기운영팀장으로 조직위원회에 입성했다. 축구행정가로서의 변신, ‘제3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낯선 환경, 낯선 문화들이었다. 축구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축구 행정은 또 다른 문제였다. 더욱이 ‘회사생활’이란 게 처음이었다. 그라운드에서 뛰던 그에게는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김동기 팀장은 특유의 진중한 성격으로 묵묵히 적응해나갔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내야하는 부담감은 분명 있었지만, 선수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외적인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했다. 모르면 물어봤고, 꼼꼼히 되새기며 배웠다. 호주에서 습득한 영어 실력도 한몫 거들었다. 유창한 영어로 FIFA 관계자들과 원활하게 대화했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운영했다.

이 경력을 인정받아 김 팀장은 2008년 대한축구협회에 입사했다. 선수 출신으로서는 첫 공개채용 합격자였다. 한국 축구 최상위 기관의 정식 직원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큰 자부심을 안겼다. 마침내 자신이 평생 몸담아야 할 곳을 찾았다. 그동안의 피나는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선수 출신만의 장점이 있다

입사 후 김 팀장은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주로 대표팀과 관련된 업무를 진행했다. 선수 출신이라는 이력을 살려 경기 분석, 테크니컬 스터디그룹(Technical Study Group, TSG) 운영 등 내실을 쌓는 일에 집중해왔다. 또 현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P라이선스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난관에 부딪힐 때도 많았다. 하지만 김 팀장은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했던 일 중 쉬운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때마다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저 노력뿐이었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다. 피나는 노력의 보상은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었다.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이 환호할 때마다 그도 마음속으로 같이 환호했다.

2015년 심판기술교육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한국축구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심판승강제의 정착을 위해 불철주야 매진 중이다. 올해부터 1년 주기로 시행되는 심판승강제는 전년도 리그 평가점수 70%에 교육 평가 점수 30%를 더해 승강비율을 결정하는데, 이 30%에 해당하는 교육 부분을 김동기 팀장이 담당한다.

도전의 연속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심판 관련 업무가 그의 주력 분야는 아니지만, 이번에도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김 팀장은 자신과 같은 선수 출신 행정가 지망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길 바랐다. 축구행정직을 원하는 지망생들이 늘어나고 있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일반 지원자들과 선수 출신 지원자들의 차이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선수 출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를 살려 최선을 다한다면 기회는 반드시 다가온다.

축구선수로 대성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다만 매 순간 준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눈앞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 철저한 준비로 ‘제3의 인생’을 개척한 김동기 팀장의 이야기가 진로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는 축구선수들에게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2월호 '풋볼잡'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안기희
사진=FA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