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우리’에 대한 믿음

용의꿈 2016. 2. 18. 12:37

‘우리’에 대한 믿음



축구는 팀 스포츠다. 각각의 선수가 좋은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팀워크가 무너지면 이길 수 없다. 팀워크의 기본이 되는 팀 효능감에 대해 알아봤다.

부진의 원인, 팀 효능감(team efficacy)에서 찾다

간혹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에 빠지는 팀이 있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의 첼시다. 2014/2015시즌 우승 팀 첼시는 2015/2016시즌 들어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하위권을 맴돌았다.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탄탄한 선수단을 가졌음에도 알 수 없는 부진에 빠진 것이다.

이럴 때 부진의 원인은 팀 효능감에서 찾을 수 있다. 효능감은 쉽게 말해 자신감을 뜻한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은 내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는데, 팀을 이루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팀 효능감 또는 집합적 효능감(collective efficacy)이 존재한다. 팀원 모두가 팀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자기 효능감은 개인의 자신감일 뿐, 팀 효능감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효능감은 높지만 팀 효능감은 낮은 선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잘 하지만 다른 선수 때문에 질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다. 반대로 자기 효능감은 낮지만 팀 효능감이 높은 선수도 있다. 이런 선수는 자신은 부족하지만 팀은 성공할 거라 믿는다. 각각의 팀원은 자기 효능감과 팀 효능감이라는 두 가지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전자와 같은 선수가 많다면 팀워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구성원 모두가 우리 팀의 성공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첼시의 부진이 계속되자 영국 현지에서는 선수들의 태업 논란이 들끓었다. 태업설 사실이라면 첼시는 감독과 선수 간, 그리고 선수 상호 간의 신뢰가 상실되면서 팀 효능감이 하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감독 경질이라는 강수

팀의 부진이 이어질 때 구단 운영진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감독 교체다. 첼시 역시 선수들과 불화설이 흘러나온 주제 모리뉴 감독을 경질하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지난해 K리그 클래식의 부산 아이파크, K리그 챌린지의 FC 안양은 감독 경질 이후 오랜 시간을 감독 대행 체제로 보내기도 했다.

리더의 부재는 조직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김병준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감독 경질이 상황이나 조직 특성에 따라 긍정적 영향을 끼칠 때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팀 내에 큰 위기가 찾아오면 작은 갈등은 봉합이 된다. 눈앞에 닥친 큰 위기 때문에 작은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다.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그동안 되지 않던 단합이 다시 이뤄지는 경우가 이런 이유다. 선수가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팀원들이 더욱 뭉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FC 안양의 사례가 그렇다”고 설명했다. FC 안양은 지난해 6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이우형 감독을 경질하고 이영민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는데, 이후 점차 상승세를 탔다.

팀 효능감을 높이는 감독의 역할

FC안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위기는 팀 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때 감독의 리더십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선수의 리더십이다. 김 교수는 “주장이나 고참 선수가 갖는 리더로서의 힘은 감독 못지 않다. 경기가 시작되면 벤치의 감독보다 직접 뛰는 선수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팀 미팅 후 주장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거나, 선수들끼리의 미팅 기회를 만드는 등 감독이 선수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감독은 팀 내의 선후배 관계 또는 파벌 관계를 잘 파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첼시의 사례처럼 선수들이 감독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 공모를 통해 일부러 경기를 망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중, 고등부 축구팀에서 종종 발생되는 상황이다. 감독은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모범적인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선수 선발에 공정성을 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김 교수는 “선수 선발에서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선수는 경쟁 선수가 못하길 바라거나 팀이 지길 바라게 된다. 팀 효능감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개적으로 선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 역시 팀 효능감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팀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팀원 모두가 노력해야 할 점은 팀이 갖고 있는 객관적인 장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팀원이 모두 모여 팀이 갖고 있는 장점을 찾아 리스트 만드는 활동을 하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동시에 팀의 객관적 장점을 팀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골을 넣었을 때 어떤 세리머니를 펼칠 것인가와 같이 즐거운 일에 대한 루틴(동작을 끝마친 후에 습관적으로 일정한 행동을 하는 것)을 함께 모여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팀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2월호 'Psycholog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풋볼리스트)
자문=김병준(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
사진=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