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긍정적 자기암시, 불안에게 틈을 주지 말라

용의꿈 2016. 1. 18. 09:45

긍정적 자기암시, 불안에게 틈을 주지 말라

 

경기를 앞두고 막연한 불안과 걱정이 머릿속을 지배할 때, 어떻게 해야 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긍정적 자기암시의 방법과 효과에 대해 알아봤다.

여자대표팀을 웃고 울린 한 마디

지난해 여름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에 참가했던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은 스페인과의 3차전을 앞두고 벼랑 끝까지 몰렸다. 1차전에서 브라질에 패하고 2차전에서 코스타리카와 무승부에 그쳤기 때문에 3차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만 목표로 한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코스타리카전을 무승부로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울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해 방문으로 향한 순간 선수들의 눈에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종이에는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스페인 이기면 조 2위다!”라고 쓰여 있었다. 윤덕여 감독과 윤영길 멘탈 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의 작품이었다. 윤 감독은 코스타리카전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도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반 막판 동점골을 허용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상실감은 더욱 컸다. 억울함에 눈물을 흘린 선수들도 있었다. 선수들은 이 문구를 보고 나서야 웃을 수 있었다.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페인전을 하루 앞두고서는 다른 문구가 방문에 붙었다. “스페인 애들 급해. 그래서 시작하면 서두를 거야. 차분하게 기다려. 그리고 악착같이 뛰면 기회가 생길 거야.”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실제 경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진행될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간단한 문장으로 설명한 것이다. 경기는 이 문구 대로 흘러갔다. 스페인은 전반전에 강하게 몰아붙이며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전 들어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한국은 체력을 앞세워 스페인을 강하게 압박했고, 결국 조소현의 동점 골과 김수연의 역전 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16강에 올랐다.

긍정적 자기암시의 두 가지 유형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서는 인지 불안이 올라간다. 막연한 걱정과 실패 또는 패배에 대한 우려, 평가에 대한 걱정 등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함과 동시에 정작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긍정적 자기암시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필요한 부분에 집중해 막연한 걱정으로 인한 인지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병준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집중할 수 있는 전략이나 포인트가 있으면 이미지 트레이닝 효과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성공 장면이 떠오르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에 필요한 부분을 적절히 준비할 수 있다. 말 또는 생각으로 긍정적 자기암시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잘 볼 수 잇는 곳에 적어놓고 들여다보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긍정적 자기암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동기유발형과 기술지시형(또는 동작지시형)이다. 동기유발형은 ‘힘내자, 할 수 있다’와 같이 에너지 끌어올리는 것을 말한다. 코스타리카전 직후 여자대표팀에게 주어진 문구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역시 이에 해당한다. 조금은 막연하지만 당장 다운된 에너지를 끌어올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술지시형은 잘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자기암시다.

스페인전을 앞두고 나온 “스페인 애들 급해. 그래서 시작하면 서두를 거야. 차분히 기다려”와 같은 것이 기술지시형 자기암시에 해당한다. 동기유발형보다 높은 차원의 자기암시라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기술지시형 자기암시를 하게 되면 자신의 임무가 확실해진다.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의 단서가 되는 것이다. 정신력이 강한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기술지시형 자기암시를 함으로써 인지불안을 해소한다”고 말했다.

자기암시의 전파

선수 개개인의 긍정적 자기암시도 중요하지만 캐나다 여자월드컵 당시의 여자대표팀처럼 팀 차원의 긍정적 자기암시 역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축구와 같은 팀 스포츠에서 만약 한 선수가 부정적인 자기암시를 하고 있다면 이것이 팀 전체로 전파될 수도 있다. 개개인의 자기암시를 동료들끼리 서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구체적인 기술지시형 자기암시의 경우 포지션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놓고 팀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고 정신력이 강한 팀이 되는 것이다.

여자대표팀은 프랑스와의 16강전을 앞두고서도 합의된 문구를 통해 팀 차원의 자기암시를 했다. 프랑스는 세계적 강호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부담감이 따랐다. “프랑스는 균형이 흔들려 세밀함이 떨어질 거야. 초반에 우리에게 기회가 와. 침착하게 만들고 악착같이 서로 돕고 견뎌. 우리는 생각보다 강해져 있어”라는 문구였다.

김 교수는 “강팀의 경우에는 자기만의 플레이스타일을 밀고 나가는 반면, 약팀은 상대를 분석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이 포인트에 대해 기술지시형 자기암시를 만들어 놓으면 좋다. 실점한 상황이나 위기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하고 실제 경기에서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자대표팀은 프랑스와의 실력 차를 실감하며 패했지만, 긍정적 자기암시의 과정에서 얻은 근성과 끈끈함이 돋보이는 경기로 인상을 남겼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1월호 'Psycholog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풋볼리스트)
자문=김병준(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
사진=FA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