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이른 선제 실점의 심리, 패닉에 빠지면 위험하다

용의꿈 2016. 1. 14. 10:38

 

이른 선제 실점의 심리, 패닉에 빠지면 위험하다

축구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가 선제골이다. 누가 먼저 상대 골망을 흔드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절대적인 건 아니다. 때로는 이른 시간에 골을 넣은 팀이 역전을 허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면 먼저 골을 내주고도 침착하게 경기를 뒤집는 팀도 있다. 선제 실점을 극복하는 힘은 무엇일까?

#1. 칠레 U-17 웓드컵 16강전(2015년 10월 29일) - 한국 0-2 벨기에

지난 10월 칠레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에서 최진철 감독이 이끈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여유롭게 16강에 진출했다. 제동이 걸린 건 16강 벨기에전이었다. 한국은 전반 11분 만에 벨기에의 욘 반캄프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대회 첫 실점이었다. 골을 내준 한국은 공세를 펼쳤다. 수비 라인을 올리고 거칠게 벨기에를 괴롭혔다. 하지만 골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22분 마티아스 베레스에게 추가골을 허용했다. 후반 25분 이승우가 페널티킥 기회를 잡았지만, 실축하면서 한국은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 결국 4경기 만에 대회를 마감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 K리그 클래식 14라운드(2015년 6월 3일) - 전남 드래곤즈 1-2 광주 FC

지난 6월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 경기에서 광주는 전반 2분 만에 전남 공격수 스테보에게 첫 골을 내줬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를 통틀어 8번째로 빠른 시간에 골이 나왔다. 실수에 실수가 겹쳐 나온 실점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실점 과정도 나빴다. 선수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실수가 겹쳐 나온 골이었다. 선수단 전체가 심리적으로 한번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광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공수 균형을 잘 맞추고 특유의 짧은 패스 플레이로 전남 수비를 공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광주는 후반 22분 여름이 동점을 만들었고, 42분에는 김영빈이 역전골을 터뜨렸다. 킥오프한지 2분 만에 실점해 65분 동안 끌려 다녔지만 후반 중반을 지나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U-17 대표팀과 광주는 어떻게 달랐나?

보통 선수들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인지불안에 빠진다. 경기에서 패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며 걱정하는 증상이 일어난다. 경기에 들어가면 신체불안이 시작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입이 타며 손에 땀이 나는 경우가 있다. 경기가 잘 풀리거나,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면 불안감은 낮아진다. 반대로 경기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 신체불안이 극에 달하게 된다. 이른 실점이 이에 해당한다. 어린 한국 선수들은 신체불안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병준 인하대 체육학과 교수는 “인지불안과 신체불안이 결합해 수행 추락을 야기할 수 있다. 결과에 대해 걱정이 앞서 아무 것도 못하는 패닉을 경험한다. 패닉 상태가 되면 신체 능력이 떨어져 가진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수행 추락은 신체적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패닉 체험을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라 한다. 김 교수는 “카타스트로피 체험은 혼자 극복하기 힘들다. 몇 분 이내에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수행 추락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최소 20분은 지나야 하고 불안을 충분히 낮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한국은 하프타임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했다. 그 결과 후반 중반까지 경기 운영을 잘했다. 골을 넣기 위한 과정이 전반보다 수월해졌다. 그런데 후반 25분 이승우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 선수들이 다시 패닉에 빠졌다. 이후 경기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실점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카타스트로피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선수들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요소를 만날 경우 심리가 크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17세 대표팀의 경기는 매우 중요한 일정이었다. 월드컵 16강전 경기였기 때문에 탈락하면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광주에게 전남전은 K리그 클래식 정규라운드 경기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선제골을 이른 시간에 내줘도 크게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프로 선수들이 먼저 골을 내주는 것은 대단히 일상적인 흐름이다. 경기에서 져도 남은 경기들을 통해 만회할 수 있기 때문에 카타스트로피에 쉽게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광주 선수들은 인지불안과 신체불안의 수준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린 17세 선수들과는 다르다.

 

경기 도중 패닉에서 탈출하는 법

앞서 설명한 대로 패닉, 그러니까 카타스트로피에서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경기 도중에는 더 어렵다. 웬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면 극복하기 어렵다. 가장 효율적으로 카타스트로피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루틴(routine)을 유지하는 것이다. 루틴이란 최적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일정한 절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준비하는 행동을 말한다. 선제골을 빠르게 내준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하던 플레이를 유지해야 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루틴에 집중할 때에는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에 침범하지 못한다. 루틴은 신체불안이 급격히 높아지는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하던 습관과 플레이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팀 전체로 보면, 일관된 전술을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실제로 남기일 광주 감독은 “이른 시간에 골을 내줬지만 우리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했다. 후반 중반까지 골을 넣지 못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원래 우리는 짧은 패스를 통해 전진하는 팀이다. 일단 이 점에 집중했다. 하던 대로 한 게 역전승을 만들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어떤 식이든 루틴은 긴장을 푸는 데에 도움이 된다. 개인은 물론이고 팀도 원래 하던 플레이가 잘 나올 때 평정심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12월호 'Psycholog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정다워(풋볼리스트)
자문=김병준 교수(인하대)
사진=FA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