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무릎 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당한 이동국은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다.
비행기를 타고 터뷸런스를 경험해본 사람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공포감을 느끼듯, 큰 부상을 입은 축구 선수는 동일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상 이전의 좋았던 경기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부상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공포감을 느끼고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당하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질환이다. 사건을 ‘부상’으로 한정하면 ‘부상 트라우마’와 같은 말이 된다. 축구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악몽 같은 단어이기도 하다.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선수들은 많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심각한 사건이다. 특히 발목이나 정강이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파열되는 등의 중상의 경우에는 선수 생명과 직결된다. 한 번의 부상으로 인해 현역에서 물러나는 이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큰 부상을 당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가깝게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이청용이 정강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후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소식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이청용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예전에 다쳤던 정강이뼈에 실금 골절을 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큰 부상이 트라우마로 남는 것은 뇌의 편도와 연관이 있다. 뇌 안쪽 변연계에서 외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편도와 해마의 협업 시스템이 불안 혹은 공포라는 감정으로 인해 붕괴되면 트라우마가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기억 저장 시스템에 남은 트라우마는 기억 조각으로 분리돼, 당시의 상황을 떠오르게 만드는 상황을 마주할 때 되살아난다. 이를테면 부상당한 당시의 장면이 반복되거나, 자신에게 해를 입힌 선수의 축구화를 우연히 볼 경우에도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불안하거나 두려운 감정만을 주는 게 아니다. 심하면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정신질환과 집중력 감퇴 등의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축구 선수의 경우 몸이 정상일지라도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무릎 인대가 파손되는 큰 부상을 당했던 홍정호는 부상에서 복귀한 후 한동안 트라우마로 인해 거친 플레이를 피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선수 개인은 물론이고 팀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팀 공식훈련 시간에 재활하라
큰 부상을 당하면 고립감에 빠진다. 팀 훈련은 물론이고 경기에도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축구는 단체스포츠다. 개인 훈련을 제외한 모든 훈련을 동료들과 함께한다. 선발 권한을 갖고 있는 감독의 눈에서도 멀어져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팀 공식훈련 시간에 재활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팀 훈련이 오후 2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이에 맞춰 재활을 시작하면 된다. 이 방법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자신의 재활이 팀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고립감에서 탈출할 수 있다. 김병준 인하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는 “팀 훈련 시간에 재활훈련을 하는 것을 통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불안감도 더는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재활은 강하게…체계적 둔감화 기법을 활용하라
재활을 위한 훈련은 최대한 강하게 하는 게 원칙이다. 아무리 통증이 심하고 훈련이 힘들어도 그에 상응하는 강도의 훈련이 수반돼야 회복이 가능하다. 반복되는 고통에 면역되면 아픔에 둔감해지기 때문에 트라우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부상 재발 차원에서도 체계적이면서도 강도 높은 훈련이 중요하다.
몸이 회복되면 본격적으로 복귀를 준비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100퍼센트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체계적 둔감화 기법은 단계별로 훈련 강도를 올리는 훈련이다. 이를테면 ‘걷기→달리기→전력질주→방향전환→드리블→짧은 패스→긴 패스→슈팅→몸싸움’의 순서로 훈련을 소화하는 것이다. 각 단계 별로 완벽하게 수행했을 때 다음 미션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훈련을 진행하면 몸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동시에 성취감, 그리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훈련의 끝에는 시뮬레이션 트레이닝을 하는 게 좋다. 실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마주하는 훈련이다. 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어차피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피할 수 없다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훈련을 완벽에 가깝게 준비해야 실전에 들어갈 수 있다.
100퍼센트 회복된 선수는 더 강해진다
트라우마의 원인은 몸이 아닌 심리, 혹은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재활, 복귀도 마찬가지다. 몸이 준비돼도 정신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트라우마를 지우기 어렵다.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김 교수가 부상당한 선수들과 상담할 때마다 강조하는 부분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늘 ‘부상에서 100퍼센트 회복한 선수는 더 강해진다’라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한 번 부러진 뼈는 더 단단하게 굳는다. 부상을 당해 퇴보했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끝없이 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면 극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심각한 부상을 딛고 일어선 선수들은 많다. 박지성과 이동국 등은 무릎 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은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기량을 유지했다. 이청용도 정강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지 10개월여 만에 피치로 돌아왔다. 김 교수는 “결국 정신력이 관건이다. 정신력이 약하면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라고 말했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1월호 'PSYCHOLOG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정다워
자문=김병준(인하대 교수)
사진=FAphotos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공포감을 느끼고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당하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질환이다. 사건을 ‘부상’으로 한정하면 ‘부상 트라우마’와 같은 말이 된다. 축구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악몽 같은 단어이기도 하다.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선수들은 많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심각한 사건이다. 특히 발목이나 정강이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파열되는 등의 중상의 경우에는 선수 생명과 직결된다. 한 번의 부상으로 인해 현역에서 물러나는 이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큰 부상을 당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가깝게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이청용이 정강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후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소식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이청용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예전에 다쳤던 정강이뼈에 실금 골절을 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큰 부상이 트라우마로 남는 것은 뇌의 편도와 연관이 있다. 뇌 안쪽 변연계에서 외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편도와 해마의 협업 시스템이 불안 혹은 공포라는 감정으로 인해 붕괴되면 트라우마가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기억 저장 시스템에 남은 트라우마는 기억 조각으로 분리돼, 당시의 상황을 떠오르게 만드는 상황을 마주할 때 되살아난다. 이를테면 부상당한 당시의 장면이 반복되거나, 자신에게 해를 입힌 선수의 축구화를 우연히 볼 경우에도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불안하거나 두려운 감정만을 주는 게 아니다. 심하면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정신질환과 집중력 감퇴 등의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축구 선수의 경우 몸이 정상일지라도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무릎 인대가 파손되는 큰 부상을 당했던 홍정호는 부상에서 복귀한 후 한동안 트라우마로 인해 거친 플레이를 피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선수 개인은 물론이고 팀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팀 공식훈련 시간에 재활하라
큰 부상을 당하면 고립감에 빠진다. 팀 훈련은 물론이고 경기에도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축구는 단체스포츠다. 개인 훈련을 제외한 모든 훈련을 동료들과 함께한다. 선발 권한을 갖고 있는 감독의 눈에서도 멀어져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팀 공식훈련 시간에 재활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팀 훈련이 오후 2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이에 맞춰 재활을 시작하면 된다. 이 방법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자신의 재활이 팀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고립감에서 탈출할 수 있다. 김병준 인하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는 “팀 훈련 시간에 재활훈련을 하는 것을 통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불안감도 더는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재활은 강하게…체계적 둔감화 기법을 활용하라
재활을 위한 훈련은 최대한 강하게 하는 게 원칙이다. 아무리 통증이 심하고 훈련이 힘들어도 그에 상응하는 강도의 훈련이 수반돼야 회복이 가능하다. 반복되는 고통에 면역되면 아픔에 둔감해지기 때문에 트라우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부상 재발 차원에서도 체계적이면서도 강도 높은 훈련이 중요하다.
몸이 회복되면 본격적으로 복귀를 준비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100퍼센트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체계적 둔감화 기법은 단계별로 훈련 강도를 올리는 훈련이다. 이를테면 ‘걷기→달리기→전력질주→방향전환→드리블→짧은 패스→긴 패스→슈팅→몸싸움’의 순서로 훈련을 소화하는 것이다. 각 단계 별로 완벽하게 수행했을 때 다음 미션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훈련을 진행하면 몸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동시에 성취감, 그리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훈련의 끝에는 시뮬레이션 트레이닝을 하는 게 좋다. 실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마주하는 훈련이다. 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어차피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피할 수 없다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훈련을 완벽에 가깝게 준비해야 실전에 들어갈 수 있다.
100퍼센트 회복된 선수는 더 강해진다
트라우마의 원인은 몸이 아닌 심리, 혹은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재활, 복귀도 마찬가지다. 몸이 준비돼도 정신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트라우마를 지우기 어렵다.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김 교수가 부상당한 선수들과 상담할 때마다 강조하는 부분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늘 ‘부상에서 100퍼센트 회복한 선수는 더 강해진다’라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한 번 부러진 뼈는 더 단단하게 굳는다. 부상을 당해 퇴보했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끝없이 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면 극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심각한 부상을 딛고 일어선 선수들은 많다. 박지성과 이동국 등은 무릎 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은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기량을 유지했다. 이청용도 정강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지 10개월여 만에 피치로 돌아왔다. 김 교수는 “결국 정신력이 관건이다. 정신력이 약하면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라고 말했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1월호 'PSYCHOLOG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정다워
자문=김병준(인하대 교수)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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