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수비는 더 이상 없다
빗장수비는 더 이상 없다
파주 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가 배움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두 이탈리아 지도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 올해 두 번째로 진행된 ‘2016 이탈리아 지도자 초청 교육’ 현장에 onSIDE가 다녀왔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10일까지 11박 12일 간 파주 NFC에서 ‘2016 이탈리아 지도자 초청 교육’을 실시했다. 2014년 대한축구협회와 이탈리아축구협회(FIGC)가 맺은 업무협약(MOU)의 일환으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되는 교육이다.
이탈리아에서 파견된 코치진도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41년생의 ‘백전 노장’ 렌조 울리비에리(Renzo Ulivieri) 이탈리아 지도자협회 회장과 1976년생의 이탈리아축구협회 지도자 바니 사니티(Vanni Sartini)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번 초청 교육은 두 이탈리아 코치의 주도 하에 두 개의 파트(Part)로 나눠 진행됐다. 16세 이하(U-16) 대표팀을 대상으로 한 코칭, 일선 지도자를 상대로 한 코칭이 바로 그 것이다. 내용도 달라졌다. 이탈리아가 ‘빗장수비’로 유명한 점을 고려해 지난해에는 수비와 골키퍼 교육이 진행됐다면, 올해는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 미드필드까지 전 포지션으로 내용이 확대됐다. 이탈리아 축구가 더 이상 수비만을 강조하지 않는, 공격적인 축구로 변모했다는 렌조 코치의 의중에 따라 짜인 커리큘럼이다.
수비는 공격적으로!
ONSIDE는 두 번에 걸쳐 파주를 방문했다. 먼저 4월 4일, U-16 대표팀 코칭 마지막 날이었다. 이 날은 수비 라인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습이 먼저 실시됐다. 이어 좁은 공간에서의 패싱 플레이 및 원터치 패스 등의 강습이 진행됐다.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실 관계자는 “렌조와 바니 코치는 훈련 전에 항상 ‘오늘은 어떤 훈련을 진행하겠다’고 설명한다. 오늘은 라인 컨트롤, 헤딩, 원터치 패스 등에 대한 강습을 한다. 이전에는 수비 자세와 경기 중 상황에 따른 포메이션 변화, 존 디펜스(Zone Defense) 등에 대한 강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렌조 코치는 우선 선수들에게 “볼이 상대 진영으로 가면 무조건 라인을 올려라”라고 주문했다. 다 같이 ‘UP(올려)’을 외치면서 라인을 올리라는 것이었다. 선수들은 조를 나눠 라인을 형성했고, 바니 코치의 도움을 받아 라인을 올리는 연습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소통은 당연했다. 렌조 코치와 바니 코치는 선수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라인을 올리라고 주문했다. 또 라인을 올릴 때나 내릴 때 공에서 시선을 떼지 말라고 강조했다. 어찌 보면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다음에는 좁은 공간에서의 패스 훈련을 진행했다. 조끼를 입은 선수 다섯 명이 동그랗게 선다. 그리고 조끼를 입지 않은 선수 두 명이 그 안에 들어간다. 동그랗게 선 다섯 명의 선수들이 빠른 속도로 패스를 주고받으면 안에 있는 두 명의 선수들이 볼을 빼앗는다.
여기서 관건은 다섯 명의 선수들은 형태를 끝까지 유지해야 하고, 사이가 벌어져서도 안 된다. 콘(Cone)을 놓지 않고도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나의 공간과 동료의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명의 선수들은 볼의 흐름을 끝까지 눈여겨봐야 한다. 이 역시도 생각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플레이다.
“렌조 코치는 굉장히 경험이 많은 분이다. 훈련 프로그램 자체가 선수들이 생각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훈련 내용을 따라올 수 없다. 어린 선수들한테는 굉장히 좋을 것 같다.” - 허정재 15세 이하 여자대표팀 감독
다음에는 선수 10명이 5명씩 두 조로 나뉘어 각각 다른 색깔의 조끼를 입는다.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는 헤딩으로만 패스해야 한다. 공중볼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볼이 떨어졌을 경우 손으로 잡아서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해주는 건 가능하다. 수비 시 공중볼을 따내는 훈련이었다. 체력 소모가 굉장했다.
마지막으로 원터치 패스였다. 모든 패스는 원터치 패스로만 진행되어야 한다. 세 번의 패스를 하는 동안 원터치로 연결하며 골까지 넣어야 하는, 난이도 높은 훈련이었다. 골키퍼가 볼을 잡으면 필드 플레이어는 볼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선수들의 숨소리는 거칠어졌고, 열기는 더욱 후끈해졌다. 처음에는 세 번의 패스 안에 슛해야 하는 룰에 적응을 못하던 선수들도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플레이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날 훈련이 굉장히 강도 높았고, 체력적인 부담이 됐을 텐데 선수들이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 나는 이 훈련을 통해 선수들이 경기 중에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집중하길 원했다. 생각하는 플레이는 정말 중요하다. 훈련 방법의 변화를 주면서도 생각은 끊임없이 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 - 렌조 율리비에리 코치
“렌조 코치님은 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 집중력을 많이 강조하셨다. 상대를 체크하는 것보다 볼을 먼저 신경 써야 한다고 하셨다. 조금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고 참여하고 싶다. 색다른 걸 배우니까 좋은 것 같다.” - U-16 대표팀 수비수 김태환
일단 중앙을 뚫어라!
ONSIDE가 두 번째로 파주를 찾은 날은 4월 8일이었다. 이 날은 지도자 보수교육의 마지막 날로 공격에 대한 이론 및 실기가 진행됐다. 오전에 이론 강의에 참가한 지도자들은 오후에 운동장에 모였다. 렌조 코치와 바니 코치는 시범조로 참가한 대동세무고 학생들을 상대로 실습에 나섰다. 공격에서의 움직임과 중앙 침투, 뒤 공간 공략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가장 먼저 공격 시의 움직임이다. 렌조 코치는 7 대 7 혹은 8 대 8로 상대편이 없을 때와 상대편이 있을 때의 두 가지 상황을 만들어서 공격에 대한 움직임을 익히게 하면 효과적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룰이 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는 빠른 패스를 한 뒤 슈팅을 해야 한다. 공격수 4명을 배치한 후 세 번까지는 원터치, 다음에는 무조건 슈팅을 해야 한다. 특히 페널티 박스 안쪽일수록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하며, 패스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태에서는 콤비네이션(Combination) 플레이를 해줘야 한다. 대동세무고 선수들은 처음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반복 훈련을 거치면서 서서히 익숙해졌다.
훈련을 관전하던 지도자들은 이게 바로 생각하는 플레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어디로 패스해야 할지, 그리고 생각과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유소년부터 익혀야 하는 부분이다.
“렌조 코치랑 바니 코치는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 미드필드에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 같다.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선수들이 생각할 수 있게끔 지도자가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다려주고 인내하는 것도 필요했다.” - 강은석 대한축구협회 지역지도자
상대 수비의 형태를 보고 공격 루트에 대한 빠른 판단을 하는 훈련도 이뤄졌다. 자체 미니 게임에서 대동세무고 선수들이 측면으로만 침투하려 하자 렌조 코치는 “과감하게 중간으로도 돌파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상대 수비가 모여 있으면 측면으로 가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중앙으로 돌파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축구가 ‘빗장수비’로 유명하다고 해서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렌조 코치와 바니 코치의 지도는 굉장히 공격적이다. 공격 할 때 뒤로 물러서는 것보다 앞에서 부딪히는 걸 더 강조하는 것 같다.” - 남궁도 성남FC 12세 이하(U-12)팀 감독
“공격을 할 때는 측면과 중앙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우선은 중앙 침투다. 상대 수비에 따라서 달라져야겠지만 가장 빠른 건 중앙 침투다. 공격수 두 명의 콤비네이션 플레이로 중앙 침투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뒤 공간 침투도 마찬가지다. 이를 선수들이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복 훈련 등 지도자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렌조 율리비에리 코치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5월호 'SPECIAL'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 = 안기희
사진 = FAphotos